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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7.11.21 21:58 | 조회 120
    2017 고성오광대 기획공연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고성오광대는 전통예술계에서는 가장 알려진 탈춤 중 하나이다. 그러나 탈춤이 연극의 유산으로 취급되어 오면서 춤의 기능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해오지 못했다. 이에 춤이 가장 많이 집약되어 있는 고성오광대의 갖가지 춤들을 모아 무대에 올린다. 

    고향을 나누는 춤판 <춤의 고을, 고성사람들>
    고향을 떠난 이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밤내 자갈밭, 군청의 객사마당, 몰디산 언덕 등에서 펼쳐지던 오광대 춤판을 비추는 모닥불이 타고 있으리라는 것이 고성오광대보존회원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춤판을 통하여 고향의 소식을 전하고 서로간의 나눔을 가지려고 한다. 또한 출향인과 재향인의 상호연대를 이루는 것이 "21세기형 고성 문화 인프라 구축"의 한 방법임을 확신하고 있다. 춤을 통한 만남의 자리, 말하지 않아도 통하던 정과 같이 춤은 오래된 통신수단이기 때문이다.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경남 고성의 탈놀이는 낙동강 서편에서 탈놀이를 부르는 이름으로 '오광대 놀이'라 한다. 오광대란 뜻은 동, 서, 남, 북 중앙의 다섯 방위(五方)를 상징하는 다섯 광대(廣大)가 나와서 노는 놀음이라는 뜻이다. 고성오광대 놀이는 여타 탈놀이와 같이 양반 계층의 위선과 형식에 치우친 윤리를 익살스럽게 조롱하고, 파계승에 대한 풍자, 처첩간의 갈등을 통한 서민 생활의 고달픔을 숨김없이 털어 내 보이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탈춤이 일제시대 말에 전승이 끊어지다 50년대 후반쯤 놀이가 복원된 반면 고성오광대는 1946년 당시 고성 읍내에 신식으로 들어선 가야극장 낙성식 기념공연을 계기로 일제시대의 명인들에 의해 곧바로 복원 공연되었고, 6.25 전란 중에도 몇 해 거르는 정도로 단절이 길지 않아, "고형이 유실되지 않고 새로이 복원해 넣은 연출적인 공정 없이 잘 전승되어 가장 원형에 가깝다는" 평을 받으며  종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가장 오래된 춤 문헌을 간직한 춤의 고을, 고성(固城)
    경남 고성은 작은 읍에 불과 하지만 예로부터 내려오는 탈놀이는 그 역사가 깊다. 지금까지 탈놀이의 역사를 현지의 구전에서 찾고 있지만 고성의 경우 100여년전 오홍묵이라는 원님이 쓴 '고성총쇄록'에 그 놀이의 실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고 그 기록의 끝에 "오래된 관습"이라 이야기된바 사서를 소급해 찾으면 신증 동국여지 승람에서도 그 놀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를 지닌 탈놀이이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읍이 가진 폐쇄적인 분위기를 도움 받아 지금도 손실되지 않는 옛 고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탈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옛 농촌 사회가 선영의 산소 언저리를 떠나지 않고 살아왔듯, 스승의 문하를 멀리 벗어나지 않고 100년전과 다를 바 없이 한 계보를 이루며 탈놀이를 거행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이 탈놀이를 배워간 숫자는 현재까지 3만명을 넘고 있는데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는 축제처럼 밀려들어 춤 세상을 만든다. 전국의 대학 민속패들의 본향이라 할 수 있으며 향민의 춤에 대한 애호를 고려해 보면 전국 제일가는 '춤의 고을'이라 할 수 있다. 

    춤의고을 공연 프로그램

    승무춤
    고성오광대 제 4과장 승무과장에 나오는 춤으로 파계승의 춤이다. 일반적으로 승무라 하면 권번계통으로 전승된 염불. 타령 등의 장단을 쓰는 승무를 말한다. 그러나 이 승무는 권번 계통의 승무와는 다르게 굿거리와 자진모리로만 구성되어 있다. 승무의 줄거리는 수도승이 미녀의 유혹에 넘어가 파계승이 되는 과정을 묵극으로 진행하고 있다. 유심히 살피면 장삼을 놀리고 소무를 어르는 장면은 마치 권번 계열의 승무의 이면을 줄거리로 풀어 놓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탈놀이이기에 느린 장중함보다 신명에 더 치중 되어있다.

    말뚝이춤
    고성오광대 제2과장 양반과장에 나와 양반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하인 말뚝이가 추는 춤이다. 황해도 및 경기지방의 탈춤의 주인공이 노장스님이라면 남쪽은 단연 말뚝이다. 그래서 말뚝이 춤에 고성을 대표하는 춤사위들이 나온다. 말뚝이의 신분이 상민이라 양반보다 더 활달하고 큼직하게 춤을 춘다. 말을 다스리는 긴 채찍을 취두르면서 춤을 추는데 양반을 조롱하며 상하 사방을 치고 휘두른다. 공격의 대상이 양반을 향하고 있지만 춤사위를 잘 살피면 예전 벽사의식무의 흔적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문자에서 찾을 수 없는 춤 역사의 편린을 밝힐 수 있는 춤사위인 것이다.

    원양반춤
    고성오광대 제2과장 양반과장의 춤사위이다. 원래 양반들은 하인 말뚝이에게 꼼작 없이 당하는 어리숙한 양반들이다. 그러나 춤사위는 기품 있고 당당하게 진행한다. 동서남북 중앙을 상징하는 다섯 색의 옷을 입은 양반들이 각기 멋스런 춤을 춘다. 그 중에서도 중앙의 황색도포를 입은 원양반의 사위가 가장 독특하다. 흔히 원양반 춤이라 하며 말뚝이 춤과 더불어 고성오광대를 대표하는 춤사위이다. 양반들은 부채를 들고 춤을 추는 데 시종 엇박을 밟으며 춤을 춘다. 또 모든 양반들이 뛰다가 급작스레 수구려 않는 배김새는 전통춤 중 군무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문둥북춤
    오랜 유랑으로 헤어진 옷을 입고 있는데, 손가락은 자고 나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팔목은 시종 떨린다. 밀을 비벼 먹는데 성한 마디가 없어 좀처럼 되지 않는다. 결국 팔꿈치로 짓눌러 비벼야 한다. 그렇게 허기진 배를 채우고 흥이 있는지라 소고를 쥐려하나 되지 않자 무릎을 치며 한탄한다. 굿거리 장단으로 펼쳐지는 문둥광대의 좌절이다. 이런 극적 형식이 무용적으로 잘 표현되는데 종래에는 소고를 쥐고 한바탕 춤을 춘다. 그리고 신세 한탄을 넘어 당당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진모리장단에서 신명으로 풀어낸다. 조이고 푸는 맛이 명확한 춤이다.

    덧배기춤
    고성오광대에서 추어지는 춤을 형식에 관계없이 풀어내는 춤 사위이다. 경상도의 덧뵈기춤으로 불리워지는 즉흥적이며 남성적인 멋을 조이고 풀어내는 마당으로 영남춤의 흥을 표현한다.

    제밀주과장
    고성오광대에서 연극성이 가장 뛰어난 부분이 제5과장 제밀주 과장이다. 치마와 저고리 사이에 배가 둥그렇게 나온 할미가 헤어졌던 남편을 찾았으나 이미 제밀주라는 첩이 있었다. 처와 첩 사이의 갈등을 허둥지둥 말리려드는 시골영감, 해산달이 되어 첩이 황봉사가 경문을 하는 사이에 득남을 한다.처와 첩이 서로 보듬으려다 아이가 죽고 처와 첩의 다툼 끝에 할미가 죽어 상여가 나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처첩간의 갈등이 해학적인 몸짓과 토속어로 구성되어있다. 이 과장은 원형대로 공연하여 탈의 신명을 맛보게 한다.

    • 2017. 11. 24 (금) 오후 7시 30분
    • 부산 국립국악원 대극장(연악당)
    • 주    최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사)고성오광대보존회
    • 주    관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호 (사)고성오광대보존회
    • 후    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재청, 경상남도, 경남고성군, 주)무학, 좋은데이 나눔재단, 경남메세나, 재경고성향우회, 고성오광대 후원회
    • 문    의 | 고성오광대보존회 055-674-2582 공연기획MCT 02-2263-4680
    • [제작스탭] 총예술감독 이윤석 연출 진옥섭

    춤추는거미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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