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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6.10.04 20:01 | 조회 1375
    카롤린 칼송 무용단원 원원명을 만나다!
    SIDance2016 카롤린 칼송 무용단

    지난 9월 28일 서울세계무용축제 SIDance 2016 참가단체 가운데 하나인 카롤린 칼송 무용단의 <단편들>공연이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있었다. 아쉽게도 이 날 카롤린 칼송은 건강문제로 내한하지 못해 본인의 솔로 작품 ‘BLACK OVER RED(로스코와 나의 대화)’가 취소되고 대신 브라임 부슐라겜과 협업한 ‘WHAT DID YOU SAY?’라는 작품이 공연되었다. 이 날 공연 한 세 개의 솔로 작품 중 ‘불타는(burning)’이라는 마지막 작품에 출연하여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 춤꾼 원원명씨를 만났다.
     


    Q : 반갑습니다. 공연 잘 봤습니다. 카롤린 칼송이 건강문제로 한국에 오지 못해서 아쉬웠는데요,카롤린의 상태는 어떤 가요?
    A : 네. 다행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고, 회복 중입니다. 조금 긴 휴식이 필요 하신 것 같아요. 73세의 연세에도 여전히 무대에서 직접 춤을 추고 많은 안무작업과 연구를 정력적으로 해나가시는 카롤린에게 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Q : 네. 다행이네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 네, 카롤린 칼송 무용단 공연을 위해 내한한 원원명입니다. 서울 출생이구요, 고등학교 때 연극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뮤지컬로 관심이 넓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춤을 접하게 됐죠. 학창시절 전공은 현대무용이었지만, 한국무용, 발레, 사회무용,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접하면서 지냈어요. 서울예대 무용과에 들어가서 김기인 선생님의 ‘스스로 춤’에 흠뻑 빠져 보냈고, 졸업 후 한예종 무용원 실기과에선 미나유 선생님의 철학과 무용세계에 흠뻑 빠져 보냈습니다. 두 분은 제가 지금까지 무용수 생활을 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큰 힘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항상 제 마음 안에 있습니다.
     
    Q : 주로 외국에서 활동해오셨는데요, 처음 해외로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A : 2002년 안성수 선생님 작품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나초 두아토가 한국에 공연을 왔고, 그쪽 스텝의 주선으로 2003년 스페인에 가서 3개월간 스페인 국립무용단 수업을 받게 되었죠. 이후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카롤린 칼송을 만나러 그녀의 스튜디오인 아틀리에 드 파리(Atelier de Paris)로 갔죠. 카롤린과 첫 작업, 공연은 2004년 프랑스 파리의 카투셰리에 있는 아쿠아리움 극장Théâtre de l’Aquarium Cartoucherie 에서 공연 한 <찻집의 호랑이들:Tigers in the tea House>이라는 카롤린의 신작이었어요. 카롤린의 작업을 하면서 빔 반데키부스와 울티마베즈 단원으로도 활동하게 되어 이후 몇 년간 매우 바빴지만 재미있게 보냈어요. 일정이 너무 많아 겹치기 출연을 하는 상황이 계속되다보니 나중엔 한계가 오더라구요. 그래서 여행을 하며 좀 쉬는 기간을 가졌지요. 2007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교류 분야 기금을 받아 ‘씨앗’이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6개월간 진행했어요. 혼자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33개국 106개 도시를 여행하며 각 지역에서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춤추는 프로젝트였죠.
     
    Q : 정말 흥미로운데요! 혼자 배낭여행을 하면서 춤을 추는 프로젝트라니 멋있어요! 춤을 추는 방식은 참 다양할 수 있네요.
    A : 제 나름대로 Expedition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라고 이름을 지어 떠돌아 다녔죠. 그리고 나서 캐나다로 갔어요. 거기서는 마리 슈리나의 작업에 참여했는데요, 그곳에서 무릎 인대를 다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후 몸을 추스르며 지내게 됐죠. 그러다보니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무용단 생활 없이 쉰 셈이 됐네요. 하지만 작은 프로젝트를 틈틈이 하며 무대에 대한 저의 갈증을 해소 했습니다. 항상 간간이 연락을 해오던 카롤린이 솔로 작품을 제안하기에 2015년에 ‘불타는(burning)’을 준비하면서 다시 무용수로 돌아오게 됐어요.


    Q : 여러 해 동안 쉬면서 어떻게 지내셨나요?
    A : 그냥 살았어요. 작은 프로젝트로 무대에 틈틈이 발을 딛었죠, 캐나다, 미국, 스웨덴 말 농장, 소 농장 에서 일하고. 여행도 하고. 말 농장은 말을 좋아해서 간 거예요. 제가 동물, 유목민, 아미쉬 공동체(반문명주의적 생활공동체), 아메리카 원주민 등 다른 문화들에 관심이 많아요. 말을 교통수단과 경작에 이용하고, 말 먹이도 주고, 편자를 박는 장제사일도 배우면서 농장 생활을 했죠. 한국에 한 번씩 올 때도 한국 장제사분들을 찾아뵙곤 했어요. 말과 관련된 일이 좋아요.
     
    Q : 말 농장이라니, 특이한 이력이네요. 유명한 무용단에 댄서로 있다가 그렇게 지내시는 동안 재기에 대해 불안하고 조바심은 없었나요?
    A : 글쎄요, 제 머리엔 ‘유명한’이라는 게 없나 봐요. 조바심도 없구요. 난 그저 춤이 좋아 춤을 함께 췄을 뿐이죠. 쉬는 동안은 또 그것대로 즐거웠어요. 또 다시 추게 되면 추는 것 이구요. 춤을 좋아하지만, 춤을 안 추는 기간 동안에도 내 삶은 살아야 하는 거죠. 춤을 출 수 없다고 삶을 안 살 거에요? 그건 말이 되지 않죠.

    Q : 말씀하신 것처럼, 춤에 매몰되지 않고, 춤과 친구하면서, 내 삶을 잘 살아나가는 게 중요하고도 참 어려운 거 같아요. 간혹 춤이 목적이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A : 우리나라는 춤을 너무 많이 추는 거 같아요. 젊은 친구들 보면 춤으로 메꿀 수 없는 부분을 춤으로, 장식적으로만 메꾸려 하고, 춤을 이용해서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까지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 같아요. 입시, 콩쿨, 대학, 기금 등등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런 것에 시달리다 보니 창작을 하기 에는 지구력이 떨어져요. 만나면 기금신청 같은 이야기만 하게 되고. 창작에 대한 고민을 서로 나누지도 않는 거 같구요.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안타깝지요. 어떤 유행을 따라가거나 매체에 많이 소개되어야만 대중들이 “아, 유명한 춤꾼인가보다~”하고 받아들이는 얄팍한 예술 풍토도 문제죠. 결국 몸에 대한 존엄성이 사라졌고, 몸이 싸졌어요. 무용이 몸의 가치를 되돌려놔야 하는데 말이죠. 결국 이런 풍토를 만든 건 누구랄 것 없는 우리 모두이고, 저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요.
     
    Q : 맞아요. 그런 풍토가 심화되다보니 요즘 몇몇 안무가들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도 모르고 멋있는 척을 하는 것 같다거나, 무조건 유행을 따라서 현상유지를 하려 하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살아남는 것에 최적화, 이것만 중요해졌죠. 창작자로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안정적인 살아남기 대책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예술계 화두는 대학구조조정 때문에 예체능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라, 이마저도 가능하지 않아졌어요. 여기에 대응할 방법도 없구요.
    A : 그래도 언젠가는 달라질 거 같아요. 달라져야 하죠.....모르겠어요 언젠지는......모든 게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무용과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저는 찬성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무용과, 너무 많았어요. 95%는 없어지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고 싶은 사람만 무용과 가는 게 맞아요. 그래야 질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물론 그 영향으로 인해 부수적으로 일어날 현실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모른 체 하는 게 아닙니다. 많은 교직의 기회나, 몇몇의 학교로 집중되는, 지역의 문화 침체현상, 불균형화 등을 가지고 올수 있습니다. 물론 사라지거나 다른 교과들과의 통합으로 살아남는 곳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어쩌면 그런 크로스 오버된 복합환경에 의해 좀 더 창의적인 교육과정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러 상황이 발생하겠죠. 모두 서로 돕고 힘든 시간들을 잘 헤쳐나가면 좋겠습니다.
     
    Q : 유럽은 어떤가요? 거기서도 아카데미 춤 교육이 구조조정 등의 영향을 받나요?
    A :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유럽과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무용인구가 지나치게 많아요. 유럽은 원래 인구 대비 무용인구가 적기 때문에 늘 춤 출 추고 싶은 사람만 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대학교입시나, 무용콩쿨의 비중이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창작과 무용수 교육 등에 주력하지, 어떤 자리에 대한 욕심이나, 다른 부수적인 권력적인 사고를 보기가 쉽지 않아요.

    Q : 한국에는 그간 다양한 유럽 공연들이 소개되어왔고, 외국 무용단 생활을 경험하고 온 춤꾼들도 많아졌어요. 안목이 좀 생긴 탓인지, 실제로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 댄스 페스티벌에 초청이 되는 것인지, 이제는 유럽에서 온 공연이라고 해도 천차만별 이더라구요. 물론 카롤린 칼송의 공연은 매우 잘 봤습니다만, 여튼 실제 유럽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A : 벨기에가 유럽에서는 아직도 강세에요. 2000년~지금까지 젊은 안무가들이 이곳에 많이 모였고 시기가 맞아떨어져서 교류 기회가 많이 생겼죠. 지금은 벨기에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인데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좋은 공연도, 페스티벌도 점점 조직하기 힘들어질 걸로 보여요. 그러다보니 투어 스케줄을 맞출 수 있는 팀들을 끼워 넣고, 완성도가 낮은 작품들도 더러 부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더더욱 무용 페스티벌이 일회적인 공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초청 공연의 수를 줄이더라도, 좀 더 완성도 있고 진지한 작품들을 초대하면 좋겠고 또한 가능하다면 출연한 안무가, 무용수들의 워크샵 등 다른 부수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인들과 충분히 교류해야 의미가 좀 더 있다고 생각해요.
     
    Q : 그러고 보니 이번에 한국에서 워크샵 일정이 여러 개 있으시던데(경성대, 신라대, 한예종, 서울무용센터 등), 어떤 걸 하나요?
    A : 현대무용 클래스’같은 건 아니에요. 물론 대부분은 플로어부터 컴비네이션까지, 땀 쫙 흘리고 하는 클래스를 좋아하시겠지만, 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즉흥을 기반으로 몸 움직임 전반에 대해 탐구하고, 나눌 수 있는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어요.

    Q : 이번 공연하신 작품 ‘burning’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 카롤린은 동양적인 이미지, 시적 이미지에 관심이 많으세요. 이 작품은 인류가 병들어있다는 자각에서부터 비롯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를 스스로 보살펴야 한다. 인류의 시작으로 가서, 원시적 몸이 태어났다가 살고 죽는 걸 보여주죠. 나무, 물 같은 자연과 주술, 즉 불을 태워 순화하는 이미지들이 쭉쭉 나오죠. 이런 이미지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이죠. 해석은 다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시계방향으로 / '불타는' 출연: 원원명, 'What did you say?' 출연 : 브라임 부슐라겜, '바람 여인' 출연 : 치나츠 코사카타니

     
    Q :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하셨나요? 카롤린이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아마도 구조만 짜주시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거든요. 원원명씨가 움직임 시퀀스를 만들구요.
    A : 아니요. 구조를 짜주는 게 아니라 직접 옆에서 함께 추면서 만드시죠. 무용수들에게 각자 시퀀스를 짜오게 하는 게 벨기에 또는 지금 무용판의 흔한 방식이죠. 그게 시간, 돈, 다양한 볼거리 측면에서는 효율적이고 좋지만, 관계의 깊이가 떨어지는 거 같아요. 카롤린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시고, 저 또한 좋아하지 않는 방법이에요. 요즘은 무용작품 제작기간이 1개월~3개월, 뭐 이렇잖아요. 저는 시간도 길게 갖고, 바로 옆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움직이며 만드는 작품이 좋아요. 카롤린은 항상 연구한 노트 수십장을 들고 연습실에 등장하시죠. 이번에 원래 하시기로 한 작품도 한 시간짜리 작품인데 직접 솔로로 춤추시죠. 정말 에너지가 엄청나세요. 작업 과정에서도 서로 따뜻한 논쟁하며 동료애를 쌓아가요. 권위적이고 그런 게 없으시죠.
     
    Q : 카롤린은 정말 놀랍네요. 그 연세에도 거뜬히 춤 추고 대화하고 연구하고 글 쓰고 하시는 게.
    A : 가끔 카롤린을 보고 있으면 저의 두 스승인 김기인, 미나유 선생님이 항상 떠오릅니다. 카롤린이 저에게 그런 분입니다. 이번에 많이 아프시단 이야기 듣고 덜컥 했었어요. 오기 전에 샤이오 ( The Théâtre National de Chaillot, Paris)에서 만나 뵈었는데 다행히 괜찮아지는 중이더라구요. 다들 쉬라는데 극장에 나와서 쉬더군요. (웃음)

    Q : 쉴 때는 뭘 하시나요?
    A : 뭐 특별한 건 없어요. 걷는 거, 자연, 여행 이런 걸 좋아해요. 외국 여러 도시에서 지내 오다보니 다른 문화를 접하고 이해해보고 그러는 게 재미있어요. 결국 춤에서 춤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건, 이런 다른 문화들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평을 넓혀가는 식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다양한 명상이나 무술을 하면서 몸을 바라본 시절도 있었죠. 그런데 기술은 결국 몸을 길들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더라구요. 학생 때는 그런 것도 열심히 했었죠. 해야 하기도 하구요. 그러나 지금은 조금은 느슨하게 시야를 열어놓고 내가 몸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넓게 보고 있어요. 중요한 건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몸에 대한 존엄성이라 생각합니다.
     
    Q : 유럽 여러 도시에서 지내신다고 하니 역시 난민문제나 테러도 남의 일이 아니겠네요.
    A : 네. 파리 지하철도 풍경이 바뀌었어요. 완전 무장한 군인들을 지하철역에서 보게 되기도 하고. 난민문제, 인종차별은 좀 더 심각해질 거 같아 걱정이죠. 난민문제에 대해 복잡한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까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단 사람도 동물처럼 이동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권이 사라진 세계요. 국경 때문에 동물마저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세상이니, 안타까워요.

    Q : 앞으로의 계획은요?
    A :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유지하는 것이요. 먹고 사는 것도, 춤 작업도 언제나 만만치 않죠. 하지만 해왔던 정도만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 10월에는 일단 부카레스티(루마니아 )공연이 있구요.

    긴 시간 인터뷰, 고맙습니다!

    네 반가웠습니다!



    사진제공 :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글,사진_스윗초코 
    춤추는거미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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