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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10.04 14:58 | 조회 7420

    이종호, 무용계 흐름의 선두에서..




    2011 시댄스 개막날, 서강대 메리홀에서 첫 작품이 올라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종호 예술감독을 만났다. 프레스콜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온화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큰 축제를 14년간 이끈 노장답게 여유로운 개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멀리서 바라본 이종호는 기자 출신의 평론가, 시댄스의 예술감독이다. 그런데 시댄스가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축제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없어지는 걸 보면서 14년간 한 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시선이 멈춘다. 열정과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에 미쳐 어디까지 그의 영향력이 미칠 것인가.

    Q. 무용과의 인연


    어릴 때부터 문학을 아주 좋아했고, 미술, 음악, 연극 감상을 즐겨했다. 중학교 입학 후 돌아온 첫 일요일에 이모를 따라서 진명여고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석했다. 학예회 수준이 아닌 진짜 음악회는 처음이었고, 세미클래식 공연형식이었지만 음악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이 공연에서 큰 영향을 받아 음악과 연극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국악예고의 정기 무용공연을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보았다. 수준도 미지치 못했지만, 당시 민속이나 전통에 대해 평가 절하하던 시대 분위기가 더해져 매우 실망했다. 한동안 무용을 멀리하다가 1977년 가을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 중 창작그룹이 내한한 공연을 보고 새로운 무용을 접하면서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도 초기 현대무용으로 김복희와 김화숙 등이 작품을 선보였는데 무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는데 일조했다.

    연합뉴스에 입사하기 전 잠시 출판사에 다닐 때 이덕희와 만나면서 춤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불어와 영어권 신문 잡지를 번역하는 코너를 맞았다. 단지 번역으로 그치지 않고 대사관을 찾아가 에세이와 잡지를 모두 복사해서 자료 정리를 한 후 리라이팅을 했으니 글의 수준이 단순 번역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았다. 이후 몇 년 동안 조동화 선생으로부터 무용평론을 해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연극이나 오페라처럼 ‘언어’를 기반으로 한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조동화 선생은 “이종호 씨 연극과 음악은 당신이 하지 않아도 할 사람이 많다. 무용계 소식을 신동아에 17년간 혼자 월간리뷰를 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뭉클했다. 81년부터 춤지와 인연을 맺어오다 84년 무용평론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Q. 시댄스와 함께 한 14년

    이상과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기도 하지만 처음 의도했던 시댄스의 방향과 비슷하게 가고 있다. 1998년 처음 시작할 때 국내 창작무용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고, 외국의 잘 만들어진 작품에서 ‘지적 자극’이 필요하던 때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다페나 LG아트센터와 같은 곳에서 좋은 작품을 많이 들여오기 때문에 외국작품의 소개는 1/3수준으로 비중을 낮추고 있다.  

    “축제는 진화한다.” 지금 무용계 전반이 요구하는 것과 ‘니즈’를 찾아 방향을 정한다. 국제 공동창작과 외국에 한국 창작무용을 소개하는 일 등을 하고 있으며, CID본부는 “춤의 창의성 증진”에 향후 몇 년간 주력할 예정이다.  

    시댄스는 앞으로도 오래 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성격’이다. 한 예로 약을 먹으면 복용기간 끝까지 정량을 다 지키는 타입이다.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그의 성격과 함께 사명감이 그의 뒤를 밀고 있다. 한국에 이런 축제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경제적 어려움과 희생을 하고서라도 계속 할 것이다.




    Q. 평론가로서 바라본 30년간 무용

    30년 동안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했다. 창작능력, 테크닉, 지원금은 물론 국제교류 등을 통해 진일보하고 있다. 예전의 국제교류는 인맥을 통한 미국이나 일본에 국한된 교류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제대로 된 국제교류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 학교에서 벗어난 춤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교수’에만 목을 매던 시기가 있었다. 홍승엽을 기점으로 독립안무가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하나가 있다. ‘파멸적 이기주의’이다. 점점 심해지는 현상을 보면 우려스럽다.

    ▶ 고정 질문
    Q. 커피 취향은?
    단 것이 먹고 싶으면 캐러멜 마끼야또, 평소에는 아메리카노, 음식에 따라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Q. 어떤 태몽이었나?
    생각이 안 난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는데.. 구렁이 얘기를 하신 거 같고,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간단이력
    -서울대 불문과 졸업
    -전 연합뉴스 기자
    -1984년 춤지로 등단, 현 한국춤비평가협회 공동대표
    -1998년부터 현재까지 시댄스 예술감독


    글*사진_마징가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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