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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5.12.30 15:28 | 조회 2837
    비워내기와 다시 채우기
    ‘75분의 1초’ 이윤정
    2015. 12. 15-16.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



    이 공연은 ‘이윤정의 12월 춤 이어주기’라는 기획으로 제작되었다. 그간 여러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했으며, 연극이나 뮤지컬 등 넓은 영역을 아우르며 다양하게 활동한 춤꾼 이윤정의 열정과 진솔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획이라 할 수 있겠다. 동문단체나 무용단에 소속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다른 말로는 맨 땅에 헤딩하듯이 활동해나가는 안무가로서, 그가 택한 방식은 주변 동료들과의 ‘품앗이’였다. 큰 제작비 없이 여러 장르 예술가들의 품앗이로 소박하게 시작했던 이 시리즈는, 그 공을 인정받아 올해로 3년 연속 서울문화재단의 지원금을 받았다. 즉 지원금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창작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시작한 품앗이 제작이, 이제는 도리어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지원 대상이 되어버린, 참 보기 드문 성공 사례이다. 지원금의 노예가 될 것인가, 작품을 만들 용기마저 접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이러한 사례가 희망이 될 수도 있겠다.

    기획만큼이나 작품 자체도 독특했다. 내가 기억하는 무대 위 이윤정은 상큼발랄한 이미지의, 춤을 아주 잘 추는 춤꾼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는 작품이 아닐까 기대를 하고 갔는데, 전혀 다른 것을 하고 있었다. ‘보여주기’보다는 ‘비워내기’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제목인 ‘75분의 1초’는 찰나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 삶의 찰나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안무자의 노력은, ‘비워내기’ 그리고 ‘새롭게 의미를 채워넣기’로 보여진다. 볼거리를 완전히 빼버린 것이다. 관객은 삼면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무대위에는 아무런 장치가 없으며, 무용수들은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나왔다. 심지어 이 작품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용동작이라는 것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걷고, 서고, 달리고,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엉겨서 구르고, 중심을 다시 잡으려고 애쓰는 과정들이 반복될 뿐, 춤으로 보여지는 동작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일상의 단순한 움직임들을 찰나로 쪼개서 바라보고 그 의미를 철학적으로 탐구해보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었다. 한 쪽으로 몸의 중심이 기울어져 결국 넘어져서 바닥을 뒹굴다가 다시 일어나는 장면으로부터 이 작품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무수히 반복되다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다보니 무용수들은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몸에서 유지되는 균형과, 그것을 깨트리는 불균형, 그 자체에만 집중하며 움직인다. 나중에는 균형과 불균형 상태를 “온!” “오프!”라고 크게 외치면서 움직이기도 한다. 안무자는 우리의 삶이 이렇게 밸런스와 오프 밸런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찰나들로 구성되지만, 인생은 매 순간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면서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없이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이 몸들이 다시 자신을 회복하는 것은 다른 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이다. 작품 후반부에 세 무용수가 바닥에서 서로 엉켜 천천히 굴러다니면서 몸의 가능성을 소통하는 장면은, 마치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은유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하여 다시 두 발을 땅에 딛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태도는 진지하지만, 단순한 움직임이 반복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마도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르게 느꼈을 것 같다. 눈을 현혹하는 테크닉이나 무대공학을 배제하고 오로지 움직임의 순간에 몰입하게 한다는 점에 있어서 여러 가지 생각과 감동을 얻은 관객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 프로그램에 소개된 안무자의 작품의도가 공감되었던 것에 비해 작품 자체는 그다지 깊이 있는 울림을 주지 않았다. ‘나는 댄서에 더 가까운 안무자였다’라고 안무자 스스로 밝혔듯, 안무 구조의 자기완결성 보다는 댄서를 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걷고, 넘어지고, 중심을 잡거나 잃는 동작을 수없이 연습하다보면 그 단순한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감각과 정서, 그리고 사고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내 몸이 이렇게 움직여졌나?’ ‘내가 나를 통제할 수가 있나?’하는 생각부터 더 나아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하는 심도있는 질문까지 하면서 작품연습을 했을 것 같다. 일종의 수행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무수한 움직임을 몸으로 겪어낸 무용수들에게는 충분히 자기성찰적인 작품이었을텐데, 그것을 구경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밀도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움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구성적으로 잘 따라가기에는 힌트가 너무 적었다. 몇몇 장면에서는 의도적인 구체성을 보여주었어도 좋았을 것 같아 아쉽다. 팬으로서, 조금만 더 관객에게 친절한 작품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어찌됐건 독특한 기획, 예상 밖의 작품을 시도한 안무자의 용기와 실험 정신은 높이 살 만 하다. 그 역시 마음의 비워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명성이나 안정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예술세계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마음을 비워야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다. 지치지 않고 계속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길 응원한다. 


    사진제공 : 프로젝트 뽑기
    글_스윗초코 
    춤추는거미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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