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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5.05.08 20:20 | 조회 5113
    삶과 죽음의 동등한 무게
    -국립 현대무용단 [ 이미 아직]
    2015.4.23.목(木)






    국립현대무용단 이미아직 연습장면 (사진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이미 아직 - 전통과 혁신의 조화로운 구성

    국립 현대무용단의 ‘이미 아직’은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상반되는 두 단어의 조합으로 이 작업의 주제를 보여준다. 전통 장례에서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인 ‘꼭두’를 매개로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이 작업은 ‘이미 벌어진 역사’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현재의 시선에서 온전히 담아내려 하고 있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되는 실패와 죽음에도 좌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웃음으로 극복하는 한민족의 정서가 잘 나타났다. 탈춤, 판소리, 민요 등으로 대표되는 우리 민족의 유쾌한 풍자와 관객과 소통하는 장르적 특성을 잘 살렸고 우리 춤의 세계화 방편이 어디까지 성장했는지를 보여주어 관람객을 기쁘게 했다.
    우리의 독특한 장례풍습을 소재로 하였으나 표현방식은 홀로그램과 스크린을 이용해서 새롭고 신선했다. 미디어의 다양한 활용으로 효율적 표현을 도모하여 보는 이를 기쁘게 했다. 최소한의 장비와 소품으로도 한 편의 옴니버스 이야기를 보는 듯 흥미롭게 진행시켰다. 무용수의 안면을 스크린 삼아 하회탈, 각시탈, 말뚝이 가면 등이 빠른 속도로 번갈아 비춰지면 탈의 성격에 따라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무용단의 공연이었지만 연극적 요소가 강해 ‘말하는 춤’ 같았다. 손과 발에 불빛을 매달고 검은 타이즈를 입은 사람이 어두운 조명 속에 등장하면 마치 불빛 혼자 자유로이 떠다니는 느낌을 주다가, 형체가 눈에 익을 때쯤에 그림자처럼 이동하며 그림자에 불과했던 몸짓은 바다와 배와 사람으로 변주된다. 
    한정된 무대 위에서 역사적 흐름과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스케일 크게 배치했는데, 바그너의 오페라 같았다. 특히 배경음악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바그너 오페라의 특징인 유도동기(leitmotif)를 우리의 구비 문학에 결부시킨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악기에도 캐릭터가 부여되어 있었다. 해금의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신경을 긁고 대금의 몽환적 신비로움과 처연함, 전자음의 생동감이 춤과 어울렸다.


    너와 나, 우리 - 망자를 보내는 축제 

    양반들의 장례는 곡기를 끊고 곡을 하고, 지체 높은 신분에 요란하게 곡을 할 수 없을 때는 곡비(哭婢)에게 구성지게 곡을 맡기지만, 백성들의 장례는 그렇게 엄숙하지 않았다. 민가의 전통 장례에서는 상주를 웃게 만드는 게 예의였다. 망자를 보내는 공간과 산자들의 공간은 공존했고, 곡하느라 지친 심신을 위해 너스레를 떨거나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문상객들, 광대와 악공들로 질펀해져 놀음마당처럼 변하는 마당이 펼쳐졌다. ‘이미 아직’은 죽음을 대하는 한민족의 고유정서를 악공과 소리꾼, 춤꾼이 한데 어우러진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다. 두 사람이 매기고 받는 민요의 구성이 춤으로 구현됐고, 한 공간에서 장면의 극대화, 현재화된 인생 표현 등 판소리의 전통이 충실하게 계승된 모습이었다. 
    해학과 풍자가 살아있는 무대는 민감하고 가슴 아픈 근대사를 풀어냈다. 보는 사람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안무가나 연출가, 공연자 모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정신적 피로가 컸으리라 짐작해 본다.
    시신을 염하는 듯한  대학살의 현장은 빨치산, 제주 4․3사건, 여순 사건, 광주 민주화 항쟁 등을 떠올리게 했으며 아프다 못해 괴기스러울 정도였다. 옆에서 나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다른 곳만 보는 모습에서 삶의 부조리함과 인간 소외를 반성하게 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같은 처절한 상황에서 누구 하나 부당한 권력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 나를 보는 듯 했다. 권력에 길들여지고 부조리에 무뎌지고 학습되는 다수에게 불편한 정서를 한껏 끌어올렸다. 거품 물고 등장하여 시체처럼 떠돌며, 고문과 탄압으로 얼룩진 독재정권의 잔재를 보여주었다.
    화합에서 다시 갈등과 다툼이 생길지라도 삶과 죽음의 동등한 무게를 보여주는 묵직한 주제는 화해와 포옹으로 마무리 되었다. 사람 인(人)자로 서로 기대고, 등을 도닥여주며 거품을 토해 내게, 울분을 토하게 도와주었다.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신을 안아주며 산자든, 망자든 구분 없이 위로가 필요하다는 주제 의식이 살아 있는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신문과 언론은 역사를 기록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왜곡되면 쓰레기나 진배없다. 요괴와 도깨비가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함께 등장하고 사람들은 산더미 같은 기록물 속에 파묻힌다. 출판물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갈 길을 잃고, 시비(是非)를 분간할 수 없을 때 그들은 옷을 벗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본연의 나체로 회귀할 때 종이 성황당은 소박한 소망을 기원하고, 나부끼는 신문은 역사의 기록이자 진실을 알리는 창구로 제 역할을 한다. 역경과 혼란을 딛고 춤꾼은 깃털 같은 제사장 옷을 입고 스스로 꼭두가 된다. ‘꼭두’의 역할 중 하나는 망자의 저승 가는 길을 안내하는 역할로, 떠나는 이의 맺힌 데를 풀어주고, 편히 저 세상으로 갈 수 있게 이끈다. ‘이미 아직’은 무용수 스스로 ‘꼭두’가 되어 ‘한바탕 잘 놀았구나’를 외치며 망자를 보내는 의식, 하나의 씻김굿이었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떠오른다.

    저 너머의 빛이 비추면 빛 속으로 모두들 퇴장하고 환한 내일이 밝아온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만, 우리에게는 오늘의 태양이 더 의미가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도 언제나 한 줄기 빛이 있고, 고단하고 평범해 보이는 시간들도 유의미한 역사의 한 부분임에 분명하다. 다시 일상 속으로 출근하는 지하철에 몸을 던지고, 한바탕 잔치는 꿈처럼 사라졌을지라도, 무대 위에 남은 등대는 홀로 불을 밝히고 있다. 


    글_진연숙(소설가)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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