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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5.04.24 00:04 | 조회 4686
    씨실과 날실로 만나는 현대 무용
    - 한국 현대춤작가 12인전
    2015.4.14.화(火) 동숭홀




    철학이 묻어나는 무용

    동시대의 문제점을 자각하고 알리는 고단한 길을 마다하지 않는 이들을 지식인이라 한다. 이홍재 <나비로워>, 김동규<No Entry>, 조원석 <길에서 길을 묻다>, 조재혁<현-> 등의 네 작품 모두 안무가의 철학이 잘 전달되었다. 2015을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갈등이, 힘겹지만 이를 인식하고 대면하려는 지식인의 용기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공연의 제목이 ‘현대춤작가’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짜임새 있는 시(詩)를 읽듯이 주제가 느껴졌으며, 녹록치 않았을 그간의 고통과 노력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이홍재의 <나비로워>는 전후(戰後)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수작, 김규동의 ‘나비와 광장’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무참히 깨버린 전쟁과 인간 소외를 야기한 현대문명의 이기와 순수한 존재인 나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뒤, 나약하기 그지 없는 날개짓일지라도 또 한 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부조리에 대결하는 의지를 보이는 시(詩) 속 나비처럼 작가는 서글픈 몸짓을 멈추지 않는다.
    공연 당일인 4월 14일은 세월호 1주기를 앞둔 날이었다. ‘아침이슬’ 노래에 맞춘 몸부림과 춤을 추며 등장한 상여는 진도 앞바다에서 희생된, 죄없는 억울한 죽음을 향한 진혼가였다. 가슴 속이 뜨거워졌고, 구조 시스템의 미비로 어린 생명들의 죽음이 방치된 참사가 잊혀지고 왜곡되는 슬픈 현실을 자각하게 했다. 동시대의 감성과 이슈를 순발력 있게 다룰 수 있는 현대무용의 강점을 잘 살린 작업이었다. 

    종합예술로서의 현대 무용

    ‘현대춤작가 12인전’은 종합예술로서의 현대무용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종합 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음악·회화·문학·건축·무용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을 혼합하여 창조하는 하나의 통일적인 예술을 뜻한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처음 제창된 이후, 연극, 영화, 오페라와 뮤지컬 등에서 흔히 보이는 이 예술 형태가를 이제는 미니멀하다고 여겨왔던 현대무용에서도 자연스럼게 녹아들었다. 무대에 올려진 네 편 모두 음악과 소품의 활용이 돋보였다. <나비로워>는 각기 달과 해처럼 보이는 구(球)와 상여, <No Entry>는 작은 불빛, <길 위에서 길을 묻다>는 여행용 캐리어로 삶을 형상화한 유머러스한 아이디어와 반도네온을 곁들인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현->은 아쟁과 사람을 병치해서 연주하였는데, 사람에게 활을 긋는 모습은 ‘백남준의 TV첼로’를 떠올리게 했다. 또한 자유자재로 변모하는 도구를 이용하여 석기, 끌, 쟁이, 공사장 드릴 등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석기 시대부터 오늘날가지 도구의 발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영상 같았다. 마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 부분을 보는 듯 신선하고 영리한 구성이었다.

    시(詩)가 어우러진 무대

    <No Entry>는 정희성의 시(詩)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가 생각났다. <No Entry>에서 두 사람의 만남은 무대 가운데의 불빛의 점멸에 영향을 미쳤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의 전지와 꼬마전구 실험을 떠올리면 된다. 전지의 직렬과 병렬에 따라 달라지는 꼬마전구 불빛의 세기, 음극과 양극의 배열에 따라 전기가 통하기도, 안 통하기도 했던 회로처럼 서로 잘 통해서 전기가 통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먹통이 되는 때도 있는 세상사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느 날 날실과 씨실로 만나 서로 엮어 서로의 그리움과 슬픔을 나누고, 나눔을 통해 추운 겨울에도 온기를 만들 수 있다면, 지속적인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는 평범한 선한 다수에게 좋은 결과를 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은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속에 제시된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에게 닿는 길을 형상화한 무대였다. 아쟁과 사람을 번갈아 연주하고, 한 켠에 놓아 둔 다구(茶具)와 간단한 도구를 이용한 퍼포먼스만으로도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 수 있었가. 물처럼 유유자적 흐르는 삶을 꿈꾸지만 아직은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하는, 불로 만나야 하는 삶을 넘어 아름다운 음악과 여유로운 차향기를 음미하는 시대 혹은 그런 나이가 될 때까지 지식인들의 퍼포먼스를 보며 생의 감각을 깨우고 유지해야겠다.  


    글_진연숙(소설가)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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