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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5.01.14 13:22 | 조회 4876
    분노로 위안 받다
    서울발레 씨어터 <RAGE> 2014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제작지원작
    2014.12.18.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사진 : 서울발레 씨어터)


    그 어느 때보다도 춥게 느껴지는 연말이었다. 2014년 한 해를 생각하면 세월호 사고 이후 마치 모든 일상이 통째로 물에 잠긴 듯, 떠오르는 것은 없고 그저 답답함에 짓눌려 있었던 듯하다. 허나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최근의 각종 정치 사회적인 사건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엽기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안하무인, 후안무치로 끝장을 보고 있는 세상.

    공연을 보러간 날은 특히 추웠다. 밖에 나가기조차 싫은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SBT의 신작이 궁금해서 어렵게 극장으로 향했다. 여러 달 전 안무가 제임스 전이 직접 출연한 ‘TWO IMAGES'라는 짧은 작품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격정과 분노로 휘몰아치는 그의 춤이 아직도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왠지 그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작이 아닐까 싶었고, 그런 강렬한 춤사위로 연말의 무기력을 위로받고 싶었다. 극장에 들어서니 그 추운 날씨에도 만석이었다.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서울발레씨어터는 창작발레에 힘쓰고 있는 단체이다. 국내에서 창작발레의 위치는 어정쩡하다. 무용수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규모의 발레단들은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클래식 발레 레파토리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그런 발레단 중 거의 유일하게 SBT만이 창작에 힘을 쏟고 있다. 물론 발레 안무가들 중 창작 작품을 소품으로 제작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다지 평단과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무래도 주제나 구성, 표현기법에서 동시대적 감각이라고 하기엔 어색한 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품에서도 연출력의 한계가 있으니  창작발레로서 전막발레작품을 제작하기는 더욱 힘들다. 예전에 비해 발레 무용수들이 소화해내는 춤사위나 연기의 폭은 매우 넓어졌지만, 그걸 담아낼 작품의 수가 많지 않으므로 창작발레의 어정쩡한 위상이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스럽다. 발레 관객이 클래식 레파토리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창작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과연 그럴까? 오히려 창작발레작품이 없어서 못 보는 것은 아닐까?

    ‘RAGE'는 이러한 현상태에 희망의 틈새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안무가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무가 제임스 전은 발레 예술가로서는 드물게 사회적인 활동을 많이 해왔다. 공연 뿐 아니라 발레 교육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아동 청소년들을 위한 발레 체험 프로그램, 어려운 환경에서 발레를 꿈꾸는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 아줌마들, 아저씨들, 또는 부부가 함께하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왔고, 무엇보다도 언론에 자주 소개되었던 노숙자들을 위한 발레 프로그램은 현재까지도 참신하고 탁월한 기획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다양한 시민들과 만나면서 그저 무대에서 환상을 만들어내는 발레리노가 아니라, 낮은 자세의 춤꾼으로서 그들의 삶과 만나고자 한 것 같다. 그 삶이라는 현장 속에서 그는 시대의 분노를 읽어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 하나 잘 살아남겠다는 욕망이 모두를 헐떡거리며 뛰게 만드는 세상,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분노를 품게 되었다. 특히 2014년은 그 뒤틀린 욕망의 정점을 보여주는, ’세월호‘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작품 안에서는 이 욕망의 정점이 큐브 모양의 무대세트와 가로 세로의 군무 구도를 통해 죄어드는 공간감으로, 또 엄청나게 빠르고 기괴한 동작을 쉴 새 없이 해내는 미친 몸들로 구현된다. 그래서 작품은 전반적으로 노련한 구성과 구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클래식 발레의 틀을 넘어서는 생생한 움직임들로 숨 막히게 이어진다. 딱히 이것을 ‘발레’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 ‘고통과 분노 그리고 열망의 몸짓’들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무용 작품이었다. 추상적이지만 그 뜨겁고도 차가운 정서가 너무나 공감되어 함께 분노할 수 있었다. 특히 작품 중간에 군무진들이 중앙으로 떠밀려 모여들고 위에서는 파란 조명들을 매단 바가 그들 위로 내려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세월호 희생자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어찌보면 이 장면 하나가 안무자가 포착한 시대의 분노를 가장 간결하고 힘있게 설명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 장면이 지나고 또다시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계속 보여질 뿐 아니라 더욱 가속화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앞으로 세상이 어떨지 뻔해서 더 다른 대안은 없었을 것 같다. 작품 후반부에서는 애써 희망의 제스쳐를 취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듯 보였고, 이미 공연 내내 함께 빠져서 분노하느라 지쳐서인지 희망은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그저 출연자와 관객 모두 함께 분노에 집중했다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초반부터 후반부까지 거의 비슷한 리듬감으로 진행이 되어서 보기에 피로했던 점이 그렇다. 가쁜 호흡을 끝까지 밀고 가려는 안무자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작품 전체를 호흡하기에는 힘들었다. 또한 11개의 장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따로 노는 듯해서 아쉬웠다. 각 장면의 음악들이 다 다른 결을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몇몇 주역 무용수들을 제외하고는, 무용수들이 안무자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 것 같지가 않은 점도 아쉬웠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더 ‘머리에 꽃 단 미친년’같이 춰야 한다. 깊은 슬픔과 분노를 품고 온 동네를 깔깔거리며 떠돌아다니는 미친 여자가 되어야 한다. 

    초연이지만 훌륭한 공연이었다. 하지만 재공연이 될 때 이런 면들이 더욱 보완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관객들과 더 많이, 더 엉엉 울어봤으면 좋겠다. 차디찬 한 해의 끝에 좋은 작품을 선보여준 그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나저나 이런 동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작품을 국립발레단은 언제 하게 되려나? 언제까지 연말에 호두만 까긴가?


    글_스윗쪼꼬

    춤추는거미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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