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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5.01.14 13:13 | 조회 7086
    스타무용가들의 연말 춤판
    국립현대무용단 송년기획공연 <2014 춤이 말하다>
    2014.12.19.-25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국립현대무용단의 ‘2014 춤이 말하다’는 단원들이 출연하는 레퍼토리 공연은 아니었다. 무용단이 유명 무용가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시대의 춤과 몸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리서치 개념의 기획 공연이었다. 즉 국립현대무용단이 판을 깔고, 다양한 장르의 춤꾼들을 거기로 불러들여 인터뷰한 후 그 내용을 토대로 전체 공연의 뼈대를 만들었다. 각 춤꾼들은 공연에서 개인적인 몸의 경험을 강연하는 동시에 솔로춤을 선보였다. 이렇게 이야기와 춤을 한 무대에서 엮어내는 것은 국내에서 아직 생소한 ‘렉처 퍼포먼스’ 형식이다. 

    올해의 화두는 ‘소진되는 몸’이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치열하게 활동하고 있는 춤꾼들에게는 연습실에 들어서는 매순간마다 자신의 ‘소진되는 몸’을 추슬러야 한다는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이번 공연에 출연한 발레리나 김지영, 스트리트 댄서 디퍼, 전통무용가 오철주, 현대무용가 차진엽, 발레리노 김용걸, 현대무용가 김설진은 라인업만으로도 매진을 예상하게 되는 유명인들이다. 솔직히 그들이 들려주는 ‘소진되는 몸’에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이들이 한 무대에서 릴레이로 펼치는 솔로 작품들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 있었다.

    김지영은 몇 개의 발레 레퍼토리에서 뽑은 춤을 선보이는 중간 중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처음 제대로 긴장했을 때 몸의 반응, 계속 몸을 단련해야만 하는 데 따른 고충, 결혼에 대한 소망 등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는 발레리나의 모습 이면의 소탈한 일상을 들려주었다. 소극장에서 그렇게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과연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세계를 누비는 주역 발레리나는 체격과 기량이 월등하구나 싶었다. 

    디퍼가 춤을 시작하자 객석은 들썩거렸다. 그 현란한 기술과 관객까지 리듬을 타게 하는 에너지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스트리트 댄스 장르는 아무래도 쉼 없이 연결되는 기술적인 동작들 때문에 부상이 잦을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댄서의 수명도 길지 않은 편이다. 디퍼가 주로 이야기 했던 것도 부상에 대한 것이었다. 한쪽 어깨를 너무 많이 써서 당분간 쉬어야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최근 들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뒤이어 깁스 보호대를 한쪽 어깨에 매고 나와서 “그럼 이 어깨는 안 쓰고 춤을 추면 되죠”하더니 보호대로 고정한 팔은 쓰지 않고 나머지 부위만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관객들 모두 “우와~!”하면서 박수를 쳤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오철주는 평상복을 입어도 태가 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며 양복 바지와 흰 셔츠를 입고 나와서 전통춤을 추었다. 처음에는 좀 이상해 보였으나, 춤을 추기 시작하자 춤이 보이지, 옷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전통춤에서 발을 딛는 자세나 호흡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설명하기도 하고, 춤의 맵시를 위해 근력운동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보여주었다.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객석은 웃음바다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승무를 추었을 때는 모두 그 춤의 기운에 압도되었다. 역시 오래 추어진 춤은 다양하고 깊은 느낌을 준다는 것을 관객들 모두 느꼈을 것이다. 

    차진엽은 처음에 빠르고 역동적이며 아크로바틱이 응용된 움직임의 춤을 추었다. 남자무용수들한테 지기 싫었던 예전에 췄던 스타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무대에서 남자무용수의 역동적인 몸짓이 여자무용수보다 더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정도의 역동성을 갖추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런 강박을 벗어나 지금은 점점 자신의 몸에 맞는 움직임을 찾고, 자연스럽게 살려고 하고, 집에 와서 휴식도 느긋하게 하려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요즘 자신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춤을 추며 마무리했는데, 촛불 켜놓고 와인 마시며 휴식한다는 이야기때문이었는지, 일렁이는 촛불과 흘러내리는 와인이 연상되는 춤이었다.

    발레리노 김용걸이 선보인 춤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묘한 느낌이 나는 모던발레 레파토리의 한 장면이었다. 파리오페라 발레단에 있을 때 승급시험을 합격하게 했던 춤이라고 했는데, 그가 클래식 레파토리 뿐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스타일의 춤에 능한 사람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흑마 같다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서 돈키호테의 솔로를 자주 연습하며 지금도 단련한다는 이야기에서는 감동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보여준 바질의 솔로는 그야말로 흑마였다. 40대 중반의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힘과 매력이 넘쳤다. 어린 아들이 자꾸 음악만 나오면 춤을 춰서 걱정이라는 이야기에 웃음도 나왔지만 짠한 마음도 들었다. 춤으로 한 길을 가면 못해보는 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에 그의 살아온 노고가 느껴졌다.

    김설진은 무대를 흐느적 천천히 걸어다니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에 있으면서 겪은 일들, 기억나는 특정한 몸의 기억들, 신체의 비밀 같은 것들까지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어느 날 어지럽고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이야기를 한 후 이어서 보여준 춤이 정말 강렬했다. 서서 천천히 얼굴과 온 신체를 찌그러트리며 자신이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을 드러냈다. 그렇게 고통을 느끼면서도 ‘I'm O.K.'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깊이 공감했고 그 표현력에 놀랐다. 

    공연은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관객이 보기에도 재미있었을 것이다. 어찌보면 이 대단한 춤꾼들을 모아놓고 재미없는 게 이상한 것 아닐까. 하지만 스토리텔링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거창한 기획에 비해 실제 공연에서는 소진되는 몸의 의미나 가치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인터뷰의 양이 엄청났을 텐데, 그 중에서 춤과 연결지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꺼리를 잘 끄집어내지 못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야기와 춤이 잘 연결된 것은 김용걸과 김설진의 무대 정도였고, 대부분은 그냥 솔로 춤을 이어서 보여주는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내년에는 이 기획이 조금 더 준비기간을 들여서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러면 그저 춤을 보는 재미가 아니라 생각하는 재미까지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글_스윗쪼꼬

    춤추는거미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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