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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4.10.30 10:38 | 조회 6690

    춤의 향연
    - 2014.10.21.(Tue)

     


     

    구도(求道)는 세월의 선물 -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사춘기 시절 나에게 전율을 일으킨 시(詩)는 조지훈의 ‘승무’였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복사꽃 두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가 주는 감동이 어찌나 절절하였던지, 나는 급기야 또래들은 생각도 안하는 ‘승무’를 보러 가기로 했다. 국립 극장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기대하며 느꼈던 흥분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막상 승무를 보았을 때의 첫 번째 충격은 여자 무용수가 아니었다는 것과 까만 밤 노란 달빛 아래 파르라니 흐를 줄 알았던 하얀 소복이 아닌, 파랗고 노란 띠를 두른 장삼 때문이었다.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과 왠지 모를 배신감이 밀려왔다. 그 때문인지 이후 살풀이 등 다른 춤을 보면서도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어서 늘 목마름을 느끼곤 했다. 학부 수업인 ‘현대시론’ 발표에서 나는 격앙된 어조로 실제 ‘승무’가 아름답지 않았던 실망감을 하소연했고, 교수님은 어느 밤 야외에서 펼쳐진 살풀이의 아름다움을 설명하셨지만 충분치 않았다.
    불혹(不惑)이 되어 한 평생을 춤에 바친 분들의 한바탕 잔치를 보며 그 갈증을 풀려 한다. 무성영화처럼 상영되는 자신들의 지난 세월과 그 앞에 헌정되는 무대를 보며 머리 하얀 춤꾼은 아련하게 팔을 뻗었다. 지팡이를 짚어야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노쇠하였지만, 오랜 가락이 남은 손끝은 절로 움직였다. 몸이 기억하는 시(時), 자신만의 공고한 세계가 만들어 낸 몸의 언어를 동료, 후학들과 공유하는 경건한 무대는 어느새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 되고,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이 되었다.
    황무지요 불모지였던 한국 무용계의 길을 닦은 선구자들에게 바치는, 마땅히 받을 찬사를 돌려드리는 아름다운 자리였다.

     

     

    춤의 향연 - 나는 한국인

     

    딱히 피하거나 즐기거나 의도하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춤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서양예술이  친숙하고 자주 접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남의 나라를 많이 가볼수록 한국의 멋이 훌륭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춤의 향연’을 보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끌리는 익숙한 가락, 뻣뻣한 몸도 절로 흥이 나 어깨를 들썩거리게 되는 상황이 오히려 낯설다. 발장단을 맞추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역시 한국인이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당연함이 곱고도 화사한 몸짓 속에서 뭔가 고맙고 뿌듯하고 기쁘고 대견했다.

     

     

    한(限)보다는 흥

     

    수업시간마다 귀가 따갑게 들어 온 우리 민족의 정서는 한(限)이었다. 한 번도 의심해 볼 여지 없이 믿어 왔는데, 어느 날 정말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선택된 학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끝없는 외세의 침략에 아무리 노출되었대도 삶을 살아내는 원동력이 슬픔일리도 없거니와 우선 나부터 그다지 한스러워 하며 살고 있지를 않았으니까. 또 문화적 증거는 어떤가. 해학과 풍자로 웃음을 주는 작품은 탈춤, 민요, 판소리 등 얼핏 세 봐도 그 수가 많다. 또 전통적으로 한(限)의 승화를 내세우는 무가(巫歌), 제석본 풀이, 살풀이 속에도 한(限)이 전부가 아니면 중점이 승화(昇華)와 극복에 있음을 김문숙의 살풀이에서 본다. 의상도 춤도 음악도 한결 같이 곱고 편하다. 여성의 아름다움이 수묵화처럼 담담하게 묻어나와 오히려 생기를 느끼게 했다. 한량무(閑良舞)는 또 어떤가. 사대부는 점잖게 앉아 골치 아픈 공맹만을 읊었겠는가. 사대부의 절제된 흥이 담담히 담겨 고고한 흥을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백 가득한 무대 위에서 절제된 음악과 의상, 동작만으로도 세련되게 삶의 흥을 보여주는 우리 춤은 물 위에 핀 꽃송이가 되고, 잔치가 된다. 생(生)의 감각을 보여주고 구도(求道)의 삶도 보여준다. 점잖은 흥과 담담한 여흥 속에서 한 편의 소설처럼, 시처럼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

     

     

    글_진연숙(소설가)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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