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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ncingSpider | 2014.07.07 16:44 | 조회 5499

    詩로 다시 읽는 발레_돈키호테2014

    돈키호테
    -국립발레단(2014.6.25.水)

     

     

     

     

     

    키테리아와 바실리오의 케미-볼거리 풍부한 매혹의 무대

     

    발레 ‘돈키호테’는 원작의 철학적 무거움은 덜고 유쾌한 해학은 최대로 살렸다. 우리 판소리의 장점인 장면의 극대화 기법을 보는 것 같았다. 뜨거운 태양의 정열이 집약되어 기독교와 이슬람, 동서양이 공존하는 스페인의 다국적 색채를 춤과 음악으로 충분히 누리게 해주었다.
    투우사 에스파다와 그의 여인 메르세데스의 춤은 전체 구성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해주었다. 탬버린과 캐스터네츠를 활용한 세기디리아에서는 리듬감에 절로 몸이 흥겨워졌다. 다만 당김음을 충분히 활용하고 리듬을 강조한 밍쿠스의 스페인 춤곡을 오케스트라가 너무나 정직하게 연주한 것이 조금 아쉽다. 메르세데스의 컨디션은 다소 불안정하였으나 그분이 오신 키테리아의 춤은 발레리나의 몸이 음악을 완전히 익혔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경지였다. 게다가 키테리아와 바질리오의 로맨스 넘치는 케미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춤이야말로 글로벌 시대에 최적화된 예술장르이다. 번역이 필요 없다.

     

     

    카마쵸-누구라도 사랑 앞에서는 약한 것이다

     

    사랑에도 다윈의 이론이 적용되는 걸까. 말괄량이보다는 농염하게 무르익은 처녀인 키테리아는 마을 청년 모두에게 그 매력을 맘껏 발산한다. 아빠 로렌조라면 매력적인 한량과 안정된 재력을 보유한 귀족 중에 누구를 사위로 삼겠는가. 심지어 설정상 카마쵸는 젊기까지 한다. 결혼을 하면 장점은 곧 단점이고, 단점은 곧 장점임을 깨닫는다. 연애의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카마쵸의 어리석음이 결혼 이후 어떤 장점이 될지는 로렌조만이 안다. 그럼에도 카마쵸는 키테리아의 사랑을 구걸하며, 키테리아와 바질리오는 둘의 사랑에만 관심이 있다. 이렇듯 서로의 감정에만 집약된 연인은 사랑이라는 생태계에서 절대 우위를 점한다.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인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며, 카마쵸를 하위 피식자로 만들어 버린다. 남부러울 것 없을 젊고 돈 많은 귀족 카마쵸는 이 순간 아무 힘도 쓸 수 없다. 괴테가 말했듯이 누구라도 사랑 앞에서는 약한 것이다.

     

     

    왜 돈키호테인가

     

    늙고 볼품없는 기사이지만 돈키호테 맘속에는 이상을 향한 동경으로 가득하다. 둘치네아는 단지 사랑과 애욕의 대상이 아니다. 내 것이었으나 이제는 신기루처럼 사라진 젊음과 건강에 대한 동경, 불의에 항거하던 용기, 의를 쫓는 실질적 실천의 복합적 상징이며, 아직까지 견고한 기사의 의지이다.
    2막 1장에서 카마쵸와의 결혼을 강요하는 아빠를 피해 키테리와는 바질리오와 집시 촌으로 도망치고 때마침 집시촌에 당도한 돈키호테와 산초는 집시들의 인형극을 보는데 그것은 바로 키테리아와 바실리오의 이야기다. 그림자 인형극은 오늘날의 영화와 매우 흡사했다. 돈키호테 모험담 속의 이야기로서 진행되는 액자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삽입하여 발레 전체를 매력적인 이중액자 플롯으로 변화시킴과 동시에 액자 밖의 돈키호테를 일깨우는 표지가 된다. 화가 난 돈키호테는 인형극을 중단시키고 돌아가는 풍차를 향해 돌진하다 정신을 잃는다. 돈키호테가 환상 속에서 키테리아와 둘치네아를 혼동하는 것 같지만 이 부분이야말로 돈키호테가 기사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발레 내내 춤도 추지 않는 기사의 존재감이 이제 드러나게 된다.

     

     

    돈키호테-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쫓는 늘 외로운 지식인의 운명

     

    사르트르의 정의를 빌지 않더라도 지식인이란 얼마나 피로한 존재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 같은 범인에게 끝없이 사회 부조리를 질타해야 한다고, 예쁘고 보기 좋은 것에 현혹되어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등에처럼 달라붙어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계속 외쳐대다가 돈키호테는-어쩌면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지쳤다. 잠시 환상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그러나 기사로서의 자각, 지식인으로서의 자리를 지키는 의지가 황동규 ‘조그만 사랑 노래’속의 ‘어제를 동여맨 편지’가 되지 않기 위해 다시 떨치고 일어났다. 시인 김광규는 4・19 세밑의 혁명적 젊음이 옅어져버린 중년의 모습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비유했다. 돈키호테의 사랑은 진행 중이다. 환상에서 깨어나는 돈키호테는 로렌조와 카마쵸를 긴 창으로 협박하여 젊은 연인을 엮어주며 이상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간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쫓는 늘 외로운 지식인의 운명일지라도 그는 노쇠한 발걸음을 옮겨 또 다른 여정을 향해 떠나갔다.

     

     

     

    사진제공 (국립발레단)
    글_진연숙(소설가)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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