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비치스브루/타코마협교>

춤추는거미 | 2005.04.16 23:13 | 조회 7291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비치스브루/타코마협교>

- 춤은 음악의 시각화, 영상의 구체화인가? - 2005년 4월 14~16일 LG아트센터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로사스(ROSAS) 무용단의 공연을 아무런 선입견 없이 감상하긴 불가능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춤잡지의 해외동향란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수상소식 혹은 공연소식들, 그리고 지난해 내한한 <울티마 베즈>의 빔 반데케이부스와 <세 드 라베>의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를 키워낸 스승이자 벨기에 현대무용의 중심점이라는 찬사까지 안느 테레사를 수식하는 어휘들은 끝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리스 베자르가 만든 무드라 안무학교 출신에 뉴욕티쉬스쿨에서 유학하며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무용가들의 영향을 받은 안무관, 그리고 벨기에 왕립극장의 지원과 무용학교의 설립 등은 그녀를 둘러싼 신비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이러한 명성과 아우라 만큼이나 안느 테레사의 <비치스 브루/타코마 협교>는 ‘안무’의 관점에서 볼 때 감탄할만한 작품이었다. 별다른 주제나 오브제 없이 두어 시간을 오직 움직임으로만 이어나가는 능력은 많은 안무자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였다. 안무의 근원이 되었다는 째즈음악의 난해함과 자유로움을 반영하듯 춤은 정교하게 구성되었으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면서 일종의 환각효과를 일으켰다. 개개인의 무용수는 모두 다른 개성과 느낌, 움직임과 호흡을 지녔지만 서로를 방해하거나 압도하지 않으면서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 또한 작품의 중심점이 특정 무용수 혹은 특정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으로 퍼져버림으로써 춤은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어디에서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편재성, 혹은 방사성은 개개 무용수의 움직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임의 시작점과 중심점은 몸의 구석구석으로 옮겨 다니며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하였다. 그리하여 마치 온갖 색의 구슬들을 상자에 놓고 이리저리 흔들 때, 혹은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들여다볼 때의 장면처럼 무용수들은 제각각 춤추는 듯한 느슨한 관계 속에서도 서로간의 인력과 척력을 유지하였으며, 사방으로 퍼져있던 에너지가 점차 한데 모여 정점에 달했을 때 다리붕괴 이상의 폭발력을 분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안무력에 대한 찬사로도 좀더 근본적인 의문이 고개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의문은 바로 제목인 <비치스 브루/타코마 협교>에서 출발한다. 안느 테레사가 밝히듯 이 작품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비치스 브루> 음반과 워싱턴 타코마 협교의 붕괴라는 두 가지 제재에서 출발하였으며, 그에 충실하게 이 난해한 즉흥재즈를 반주음악으로 삼고 다리붕괴의 영상이미지를 춤 중간에 상영하였다. 그렇다면 결국 정교한 음악구조를 시각화하고 강렬한 영상을 구체화한 것이 춤이란 말인가?
춤의 오랜 역사에 있어 음악은 늘 문제가 되었다. 춤의 표현력을 확장시켜주는 동시에 춤의 고유영역을 침범하는 음악은 늘 곁에 있어 고맙지만 때론 성가시기도 한 친구라고 할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음악이 가장 중요한 영감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그녀의 춤은 발란신 만큼이나 음악과의 일체감을 중시하는 한쪽 극단에 속한다. 사실 리듬, 혹은 시간성이라는 것은 음악의 기초개념인 동시에 춤의 기본요소이기도 한만큼 음악과 춤은 어쩌면 절대적인 분리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특히 복잡한 음악구조와 즉흥적인 연주의 교감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시각화될 때의 지적이고 감각적인 쾌감은 단순히 정해진 동작들을 연결하여 음악을 틀어놓는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춤이란 게 과연 음악의 시각화, 혹은 음악의 신체화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해야할지의 문제는 여전히 춤의 정체성 문제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한편 영상의 사용 역시 이 문제에서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다리가 무너지는 순간을 담은 영상기록물이 반복적으로 상영되면서 ‘다리가 무너졌다. 그 효과와 인상을 춤으로 표현하겠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그런데 그 영상이 과연 필요했을까. 안느 테레사의 춤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구슬과 방울들이 모여 점성있는 조직을 만들어내었고, 엉기고 성기어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내었으며, 심지어는 폭발의 에너지와 위력까지도 충분히 구현해내었다. 그런데 그 춤의 마력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영상으로 인하여 가려지고 축소되고 불필요한 낭비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 짧은 영상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위해 그 많은 무용수들이 두어 시간동안 뛰어다닌 것인가.
최근 들어 국내외 무용작품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영상을 활용하고 있다. 어떠한 조명효과나 장치보다도 더 강렬하고 간편한 영상은 춤의 시공간과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시키고 있다. 사실 ‘새로움’으로 주목받은 안무가들 중 많은 수가 영상과 관련이 있거나 활용하고 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이제 영상은 춤의 일부가 되었다. 오히려 이제는 영상의 활용을 찬양하지 않는 것이 음악과의 분리에서 실패한 과거의 인물들처럼 시대착오로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춤처럼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비효율적인 장르로서는 영상의 직접적인 칼날에 정면으로 대적할 수 없다. 이는 비디오 댄스, 혹은 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나 영화와는 별개의 문제로써 장르 자체의 의미와 관련된다. 게다가 춤에서 영상을 통해 주제를 전달한다면, 그리고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굳이 춤출 이유가 없다. 춤이 단순히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춤이 영상으로 환원할 때에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잃을 수밖에 없는데, 그 무언가가 사실 춤에서 소중한 것이 아닐까. 마치 시의 의미가 행간 사이에 있듯이 말이다.

글/ 정옥희 oki1004@hotmail.com 사진제공/ LG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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