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드리 노니던 그 아비들, 처용되어 춤추다

춤추는거미 | 2005.03.31 11:19 | 조회 6701

밤 드리 노니던 그 아비들, 처용되어 춤추다

<男舞, 춤추는 처용아비들> 2005년 3월 8일 LG아트센터

'춤추는 여자'보다 '춤추는 남자'를 더 낯설게 여기는 것은 여전히 일반에 통용되는 고정관념의 하나이다. 그런데 '남무(男舞)'라.
2002년 9월 호암아트홀에서 남무로만 채운 이 공연이 처음 열렸을 때 “여자일색의 전통춤판에 남무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엿보여 흥미를 자극했었다. 그것도 남자가 추는 여자춤이 아니라, 남자가 춰야 제 맛이 나는 춤들로 엮어 여느 명무전과는 차별을 두었다(물론, 본질적으로 여자춤, 남자춤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춤은 누구나 출 수 있고 그 맛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놀이, 연희라는 이름으로 무용의 중심에서 비껴두었던 탈춤, 농악춤, 사랑방춤 같은 것들이다. 지난 3월 8일 이 공연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판은 LG아트센터에서 벌였다. 작년 2월, 같은 기획으로 열렸던 '여무(女舞, 허공에 그린 세월)' 공연에 이어 이번에도 티켓은 매진되었다. 객석은 집안(?)보다는 딴 식구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이구동성 어렵다는 이 불황 속에 고루한 전통춤판으로 사람을 불러모으는 이 공연의 힘은 무엇일까?
3년 전과 비교하면 그 사이 고깔소고춤의 명인이셨던 황재기 선생이 82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그 자리를 '여무' 공연에 출연하셨던 장금도 선생이 채워주셨다. 그리고 문장원(동래입춤), 김덕명(양산사찰학춤), 정인삼(고깔소고춤), 이윤석(덧배기춤), 하용부(밀양북춤), 김운태(채상소고춤), 박영수(목중춤)가 밤 드리 노니던 처용아비들이다.

공연은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기획․연출을 한 진옥섭이 출연자들의 생활터를 찾아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다. 몇 마디로 편집된 짧은 대화이지만 무대인이 아닌 생활인으로서의 모습을 굳이 보여주는 데서 연출자의 춤관이 엿보인다. 춤과 삶을 따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 공연의 출연자들은 화려한 경력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들의 경력이라면 한량, 농사꾼, 유랑농악단 쯤 될까. 그러나 이 경력은 그들의 춤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밥 먹고 나면 오늘은 어디 가서 춤추나" 했다는 동래 한량 문장원은 그야말로 손 하나만 들어도 춤이 되는 노경(老境)의 즉흥을 보여주었다. 들어올리는 손 하나에 평생 춤으로 살아온 89세 노인의 삶이 읽혀진다고 할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노인은 빨라지는 음악을 타고 까치발도 딛어 보고, 잔발도 내보았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무대였다.
타고난 끼 때문에 춤판을 떠나지 못했던 김덕명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교한 춤사위가 흐트러짐 없었다. 평생 춤과 땅을 함께 일구는 농사꾼 이윤석의 존재감도 참으로 특별하다. 힘 있게 땅에 배기고 여유롭게 풀어가는 경상도 특유의 춤이다. 유랑농악단의 신동으로 농악과 춤의 인을 박은 김운태는 소고와 채상이 몸과 완전히 일체가 되는 경지를 보여주었다. 농악판의 한 재주가 아니라 완결된 춤으로 손색이 없었다.
춤은 참 정직한 것이다. 춤은 그 사람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연출가 진옥섭은 그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기획해 온 공연들에는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아도 사는 것처럼 춤추는 사람, 혹은 인기종목이 아니라도 우리춤의 옛 멋을 묵묵히 지켜가는 사람, 육신이 아니라 마음으로 춤 출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춤은 모두 사라졌다. 명무란 무엇인가? 춤을 잘 춘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참 주관적인 판단이다. 너무 앞으로 많이 나가면 초심을 잊기 쉽다.

글/ 민강 hkk90@naver.com 사진제공/ 축제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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