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춤, 아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

춤추는거미 | 2005.01.05 22:48 | 조회 5778

전통춤, 아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재, 궁중무용의 원류를 찾아서> 2004년 12월 15-16일 오후 7시. 국악원 예악당



한 때 나는 정재라는 춤양식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궁중이 사라진 이 마당에 정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재공연이 현대인들과 무얼 나눌 수 있는 예술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으나,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1999년 국악원 무용단의 <궁중의 한나절 정취를 찾아서>라는 공연은 내 고민의 실타래를 풀어주었다. 그 공연에서 정재의 단아한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현대인인 나의 미감에 정재가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정재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미적 보편성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대중들의 미의식과 소통될 수 있는 장르이고 제대로 공부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4년의 세월이 지났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연출력이 돋보였던 1999년의 공연에 비해 퇴보했으며, 앞선 <정재, 들여다보기>와 <숙종조 기로연>의 정재공연보다도 못한 실망스런 공연이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연출개념이 없었다. 이 공연의 제목으로 내세운 것은 <정재, 궁중무용의 원류를 찾아서>였다. 그러나 원류를 찾지도, 현대적인 연출개념을 적용하지도 못한 어설픈 준비상태로 관객을 맞이했다. 이번에 공연한 헌선도(獻仙桃)․영지무(影池舞)․연화무(蓮花舞)․춘대옥촉(春臺玉燭) 네 작품 중에서 헌선도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진 정재이고, 세 작품은 1828년(순조 28) 6월의 연경당 진작 때 연행된 작품이다. 원류를 찾으려 했다면, 궁중잔치의 일정한 의식 속에서 정재가 공연된 상황을 재현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러나 창경궁의 재현행사들과 달리 이미 극장공간으로 들어왔으면, 연출된 정재공연에 보다 충실해야했다.
둘째, 국악원이 설정한 그 ‘원류’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무대공간도 원래의 궁궐 공간이 아니다. 또 춤추는 주체를 보더라도, 원래 연경당 진작에서는 모두 무동이 정재를 맡았는데 이번 공연은 여령과 무동이 두 작품씩 맡았다. 창사도 무동이 불러야 했는데 모두 립싱크만 하고 뒤의 악사가 창사를 대신 불렀다. 그나마 창사도 모두 부르지 않고 한 소절만 부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원류인 척 하지 말고, 원형대로 할 수 없는 오늘날의 조건을 솔직하게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춤자체는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노력하더라도, 그 이외의 공연요소들은 어설프게 원류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현대적 연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으로 현대인의 미감에 맞는 정재 연출력을 키워가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정재공연의 과제이다. 정재의 원류를 찾는 것은 창경궁의 연향재현 무대 같은 곳에 맡겨두자.

셋째, 과도한 해설은 오히려 공연의 맥을 끊었다. 이번 공연은 해설이 전체 공연시간의 반을 차지할 만큼 많았다. 마치 이번 공연의 컨셉은 <정재, 자세한 해설을 찾아서> 같았다. 처음과 중간정도에 간략히 해설하고 자세한 내용은 프로그램으로 제시하면 그만이다. 일일이 의물을 설명할 때는 마치 공부하는 학생이 된 듯 했다.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인데, 그걸 말로 다 환치시키려고 하니 뭔가 김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통예술이 상징의 세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상징세계를 이해하기에 앞서서 전통예술도 즐기는 것이 우선이다. 알아야 하는 대상이 된다면 결국 전통예술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공자님 말씀은 여전히 이 시대의 예술감상에서도 유효하다.

 
글/ 춤바람 choom71@hanmail.net 사진제공/ 국립국악원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12개(11/11페이지)
춤 나누기 리뷰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 화려한 셋트와 초라한 안무의 앙상블 춤추는거미 5454 2005.05.09 20:31
11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비치스브루/타코마협교> 사진 춤추는거미 7292 2005.04.16 23:13
10 밤 드리 노니던 그 아비들, 처용되어 춤추다 사진 춤추는거미 6701 2005.03.31 11:19
9 명불허전(名不虛傳)의 반백년(半白年)-베자르 발레단 (Bejart Bal 춤추는거미 6427 2005.03.09 15:35
8 [펌킨의 서적비평] 무용비평이란 무엇인가(심정민 지음) 사진 춤추는거미 6575 2005.01.31 22:54
>> 전통춤, 아는 것보다 즐기는 것이 낫다 [2] 춤추는거미 5779 2005.01.05 22:48
6 젊은 그대, 잡종임을 찬양하라! 춤추는거미 5825 2004.12.17 03:06
5 발레랩의 <증폭> 사진 [2] 춤추는거미 6380 2004.11.02 22:14
4 가관-땐스캬바레 아라비안나이트 [3] 춤추는거미 8091 2004.10.20 22:33
3 "그랑디바”의 즐거움은 어디서 오는가 춤추는거미 5778 2004.09.26 01:32
2 트러스트 무용단의 연작 그 첫 번째, '십계'가 주는 메시지-살인하지 말 춤추는거미 5802 2004.09.25 16:44
1 관객이 필요로 하는 무대, 국립무용단의 <바리바리촘촘디딤새 2004> 춤추는거미 5535 2004.09.22 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