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 잡종임을 찬양하라!

춤추는거미 | 2004.12.17 03:06 | 조회 5824
젊은 그대, 잡종임을 찬양하라! 홍혜전의 <하이브리드 ; 잡종 ; 雜種> 2004년 11월 25-26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홍혜전 안무의 <하이브리드>를 보러 공연장에 갔어. 요즘 흔히 보는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지. 탄탄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젊은 혈기를 불태우며 하룻밤 신나게 놀아보거나 주목받고 있는 외국 단체들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모양새 말이지. 그런데 공연장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 늘어선 하염없이 긴 줄에 놀라고 말았어. ‘아무리 자유소극장이 3층까지 있다지만 들어갈 수 있긴 할까. 이 사람들은 모두 안무가와 무용수들의 친구/제자들일까. 그렇다해도 엄청난 인기인걸.’ 게다가 미리 줄을 서고 있어야 하는 이유. 8시 정각에 시작하는 공연에 8시 정각에 입장하면서 바로 그 시간에 공연이 시작되기 때문이라더군.


그렇게 비집고 극장에 들어가 2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 그리고 뒤에 겹겹이 늘어선 입석 관객들. 그러나 그들은 피곤함도 모른채 무대를 즐기더라고. 무대 오른쪽 앞은 팬티 차림의 한 남자가 무엇인가를 마구 끄적이며 종이를 구겨 버리고, 왼쪽 뒤에선 색깔 액체 마술쇼가 진행중이었어. 빨강 더하기 파랑은 보라, 빨강 더하기 흰색은 분홍, 그리고 모든 색을 더해버리니 검정. 그렇게 ‘짬뽕’의 가능성은 무한한 거야. 그리고나면 팬티 차림의 그 남자의 입엔 입마개가 씌워지고 목엔 목줄이 매달리고. 그 개의 이름은 ‘순이’라더군. 순이…. 똥개의 대명사가 아니겠어? 똥개라면 소위 ☆☆탕, 그런 보양식이 생각나지. 그런데 우리의 순이는 주인의 학대를 교묘히 빠져나가 탈출해. 잘한다 순이! 파이팅 순이!

인간 개 만들기, 똥개, 인간일까 사이보그일까, 남자 여자되기, 혹은 그 반대 되기, 꿈과 생시 넘나들기, 혼혈인, 불법체류자, 인간 닭 되기, 밤과 아침의 경계를 넘어가는 닭, 그 닭의 쑈, 그리고 춤과 함께 연기하기,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맥도날드의 ‘불고기버거’. 그 퓨전, 짬뽕, 잡종 아닌 잡종. <하이브리드>는 한 시간 남짓되는 작품 내내 이렇게 잡종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여러 이미지군들로 작품을 풀어나가지. 그 나열이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심각하게 한 줄기를 따라가려다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 했다니까.
사실 이 작품은 그런 상징과 은유가 뒤섞인 여러 단편적 이미지들에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져 나가는 방식이지. 어떤 때는 한명의 독백으로 또 어떤 때는 여럿의 꽁트로. 마치 ‘웃찾사’나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이 말야. 그래서 그 흐름을 따라가면, 그때그때 솔로와 군무가 절묘하게 짜맞추어지는 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워.
여러 가지 도구와 많은 대사. 그 연극적인 진행방식이 이 작품에는 딱 맞는 것 같아. 그들은 춤과 연극이라는 가깝고도 먼 두 영역을 분리하지 않았던게지. 그것 자체가 짬뽕이고 잡종인거야. 그렇게 모든 내용과 형식이 내적 연관성을 갖고 그 안에서 다양한 놀이를 꾸며. 정말 무겁지 않게, 아주 재밌는 놀이를 말야. 여기저기 불고기버거를 던져대며, 또 관객들은 그것을 받으려고 소리치며 말이지. 혼자 낑겨 앉아 가만히 보던 나조차 박장대소를 하고말았으니.
이건 그들이 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 소재와 아이디어의 엉뚱함을 참신함으로 가다듬고 마구 내지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직 넘어져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젊은 패기와 도전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몇몇 군데에서 얻어맞는다 한들 그 비판을 즐겁게 수용할 수 있는 두려움 없는 ‘젊음’ 말야.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에게도 작품에도 솔직할 수 있고 관객에게 그 진정성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는거지. 게다가 그들에겐 남부럽지 않은 단련된 몸과 테크닉, 연기 실력까지 겸비하고서 무대에서 뛰어놀고 있으니 그 작품 어찌 재미없지 않을 수 있겠어?

<하이브리드>는 ‘흑’ 아니면 ‘백’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으로 포섭할 수 없는 무수한 명도 스펙트럼, 그 어느 언저리의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거야. 그러면서 순종과 잡종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트리고 있었지. 잡종의 관용과 자유로움, 창조성을 부각시키면서. 흔히 그러지. “이것은 순종이 아냐.” “순종이 비싸.” “순도 100%라니 정말 좋은걸” 하지만 이 세상에서 빨강과 파랑밖에 만들어낼 수 없다면 얼마나 단조롭고 재미없는 무기력만이 존재할 것 같지 않아? 그래서 그들은 다양한 ‘짬뽕’을 가지고 그 빨강과 파랑이 섞여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노래하는 거야. 그 자유로움을. 그 창조성을. 그 무경계의 두려움 없는 희망을 말야. 그리곤 읊는거야. “내가 너와 다른 것이 뭔줄 알아? 난, 안되는 것을 되게 할 수 있거든.” 이라고.

글/ 이상한나라의앨리스 ds@dancingspider.co.kr 사진제공/ 홍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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