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랩의 <증폭>

춤추는거미 | 2004.11.02 22:14 | 조회 6379

위조된 이미지의 교통사고, 섬세한 고통과는 거리가 멀다

- 발레랩의 <증폭> -

현대의 뉴스 태반이 일기예보와 교통사고로 채워져 있다는 통계는 현대적 삶과 죽음이 어떤 것인가를 단숨에 요약한다. 미래를 위해 날씨를 살피지만, 교통사고로 급하게 막을 내리는 것이 메트로폴리스의 삶의 가장 간명한 전기 중에 하나가 된 지는 오래다. 보편화되었다고 해서 익숙지 않은 것처럼 가끔 교통사고는 대중스타와 결합하여 새로운 의식을 집전하기도 했다. 가령, 앤디 워홀은 사진을 통해 그런 의식을 집전했던 전도사이기도 하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영화 <크래쉬>에서 교통사고 쪽으로 오히려 다가가 신체파괴의 치명적 마조히즘을 적극적으로 향수하는 세계를 그리기도 했다.

SIDance 2004에서 공연된 발레랩의 <증폭 Amplification>(10월 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교통사고에 대한 태도가 고전적이며 상식적이다. 충돌의 여파 때문에 회색빛 익명의 죽음으로 곧장 이어지며, 관객에게 하나의 ‘통고된 죽음’의 형식이 어떤 것인가를 전달한다. 즉 관객 역시 팔짱을 끼고 보라는 것이다. 수동적 개인의 신체가 어떻게 스위치가 내려져 간헐적인 욕망의 발작을 펼치곤 다시 캄캄한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는 태도이다.

몇 개의 창백한 형광등이 나방처럼 부르르 빛의 점멸을 보여준다. 이것은 깊은 어둠 속에서 깜빡거리는 의식의 R.E.M이다. 때를 같이하여 무대 상수의 DJ 린튼 카는 이 암전과 테크노의 시공간에다 지극히 감탄할 만한 라이브 턴테이블 콤포지션을 뿌려놓는다. 가끔 차분한 클래식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이 콤포지션의 육박해오는 느낌은 대단히 음미할 만하다. 이와 같은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하여 열정이 중화된 듯한 구성의 춤을 펼쳐보인다. 이들의 춤은 이 시공간에 구속되어 있는데, 아마도 교통사고는 무용수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또한 무용수들의 기량 자체도 빼어난 편이 아니었다.
발레랩의 공연 컨셉은 충돌로 인해 상공에 붕 뜬 상태로 1.6초간 머무를 때의 신체적 상상력을 펼쳐놓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손쉽게 페이지를 넘기듯 몇 개의 장으로 나누고, 현란한 디제잉에 힘입어 몇 개의 퍼포먼스로 관객의 가슴을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발레랩의 무용수들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교통사고를 고문실의 살풍경으로 바꿔놓았다. 또한 때가 되면 응급실의 패닉으로, 시체실의 네크로필리아 necrophilia로 전환되는 것이다. 고통에서 욕망으로 서서히 방향이 바뀌는 것이 미약하게 감지된다. 여기에는 개연성의 흐름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인 마지막 욕망의 안간힘에 가까운 요동이 있다. 하지만 발레랩의 표현력은 지나치게 단정하고 얌전한 것 같다.

무용수들은 대부분 공간 속에서 축 늘어진 신체로서 존재한다. ‘억압된 것의 귀환’이 없다. 시체실에서 죽은 여자의 누드가 시체애호증의 대상이 될 때조차도 수의에 쉽게 감싸이고 결과적으로 어떤 정서적 증폭도 없는 셈이다. 벗었다는 것 자체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일까 싶을 정도이다.

발레랩은 교통사고를 몇 겹의 의식 공간으로 나누고, 그 공간의 외피마다 춤으로 만두속을 채워넣은 그런 작품일 뿐이다. 머리가 터져 알 수 없는 점액질의 진물이 흐르듯 위험한 내출혈을 보여주지도 않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포화 상태의 폭발도 없다. 단지 몇 명의 무용수들이 기능적인 춤, 익명적인 춤으로 신체의 현대적 정체성을 잠시 반영할 뿐, 그것은 놀라운 음악적 영역 속에서 해소되어 버리고 만다. 증폭이 단지 음악의 지배를 뜻하는 것뿐이라면, 상당한 실망이다. 왜냐하면 이 임상보고서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교통사고시의 찰나지간을 오히려 놓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병원 공간을 모방하여 이미지를 위조하고 있는 작품이다.











글/ 앨리스와 탱알 erewh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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