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무용단의 연작 그 첫 번째, '십계'가 주는 메시지-살인하지 말라!

춤추는거미 | 2004.09.25 16:44 | 조회 5801

트러스트 무용단 첫 번째 연작


‘십계’가 주는 메시지- 살인하지 말라!



2003년 12월 초연되었던 트러스트 무용단의 연작 그 첫 번째, ‘십계’ - DEKALOG Ⅰ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의 창작활성화지원 수혜작으로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다시 막을 올렸다. 이 작품은 모세가 신에게 받은 십계명 중에서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살인하지 말라”는 메시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매우 당연하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계명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메시지를 안무자는 승인받은 살인과 승인받지 못한 살인, 우발적인 살인과 의도적인 살인, 폭력적인 살인과 자유를 위한 살인 등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고 풀어나간다.

여기서의 등장인물은 김윤규, 김정웅, 김태희 세명의 남자 무용수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바리바리촘촘디딤새2004>에서 김정웅이 안무했던 작품 <갑(甲)>에서도 호흡을 맞췄고 여기서도 비슷한 패턴의 호흡을 가져왔다. 눈가린 여자를 희롱하고, 깡통을 차고, 분필로 바닥에 땅따먹기 그림을 그리고, 새총을 쏘는 등의 행위는 앞의 작품에서보다도 더욱 강조되었다. 지나치게 심각함만을 추구하는 작품에 비해 이들의 작품은 심각함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신선함도 있겠지만, 이번 작에서는 그것이 지나쳐 장난질의 느낌이 강했다. 그런 일련의 놀이들이 뒤에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는, 혹은 저지를 뻔한(죽은줄 알았던 출연진이 다시 벌떡 일어났을 때의 황당함이란...) 사건과 어느정도 개연성있게 맞물리긴 하지만, 놀이 부분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작품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시작된다. 조명이 어슴프레 무대를 비추면 무대 위의 사람들이 알수 없는 말소리를 웅얼거린다. 사람들은 점차 바삐 움직이고 서로 스치면서, 속삭임이 커지며 외치고, 화내고 상대방에게 윽박지르는 톤으로 변한다. 그들은 놀이, 즉 깡통 차기, 땅따먹기, 새총쏘기 등을 통해 사건의 발단을 풀어 나가고 있다. 이것은 갈등의 싹이 되고, 급기야는 우발적으로 상대방의 목을 조르게 된다. 그리고 목을 졸렸던 이는 이내 또 다른 이의 목을 조르게 된다. 여기서 안무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살인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살인을 할 수도, 살인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남에게 면도를 맡긴채 누워있는 남자도 살인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랑을 갈구하는 사과를 든 여인은 나열하기식 에피소드의 하나로 작품에 삽입되었지만 주제와는 연결고리가 약해 작품주제를 산만하게 하였다.

뒷부분에서는 장애우 출연자가 메신저로 등장한다. 그의 몸짓은 군상들 속에서 서로 상처받고 상처주는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화해시킨다. 무용 공연에서 장애우의 출연은 처음 보았지만 그것은 억지스럽지 않았다. 메신저로서의 역할이 작품에 잘 묻어나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이런 모든 산발적인 사건들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루어지며 그것은 뒤에서 계속 달력을 찢음으로써 표현하고 있다. 시간은 어떤 경우에도 계속적으로 흐르며 그것을 누군가는 계속 기록을 하고 다니고 있다. 기록자는 출연자들을 밖에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액자식 태도를 취한다. 종반부에 ‘누가누구를 낳는 것’만 수 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살인’과 대비되는 생명 탄생의 창세기 부분을 영어와 한국어로 낭독하고 뒤에선 누군가 여전히 그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 되어진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사건이 횡횡한 현대사회에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너무도 당연하다 못해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보편적이면서도 흔히 쓰이지 않는 주제를 작품에 도입한 것은 소재의 발굴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라 생각된다.

글/만두매니아 jutte96@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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