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필요로 하는 무대, 국립무용단의 <바리바리촘촘디딤새 2004>

춤추는거미 | 2004.09.22 23:20 | 조회 5534

관객이 필요로 하는 무대


국립무용단의 <바리바리촘촘디딤새 2004>



소극장, 저렴한 관람료(여기서는 공연참가비라 부름), 안무자와의 대화 시간, 긴 공연날짜... 이 모든 요소들은, 일단 일반 관객들을 극장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듯 하다.

‘해설-원류 레파토리 작품 시연-레파토리를 바탕으로한 창작품공연-공연자와의 대화’로 이루어진, 올해로 네돌째를 맞는 국립무용단의 대화가 있는 무대 <바리바리촘촘디딤새2004(8월 7일 부터 24일)>는 부담없이 다가온다.
<나목(裸木)에게(8월 11일 관람)>를 안무한 박영애 양은 마이크를 쥐고 청중에게 제법 능숙한 말솜씨로 이매방류 입춤에 대해 거창하게 준비한 페이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자세히 들어보면 페이퍼의 내용이나 설명은 형편없었다. 페이퍼의 소제목과 내용이 따로놀고, 1900년대를 19세기라 하고, 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인간문화재라고 지칭한 안무자의 식견은 차치하기로 하자. 안무자의 실수, 혹은 순간적인 헷갈림일 수 있으니까.
이매방류 입춤이 시작되었을 때 그런 낯뜨거움과 꺼림직함은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왜냐하면 원로 이매방 선생이 직접 장단을 쳤기 때문이다. 이매방 선생의 장구 장단은 구음이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에 감칠맛 나게 감겨들었다. 입춤을 시연한 이현주(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씨는 단아하고 숙련된 솜씨였으나 이매방 선생 특유의 빨랫줄 호흡(필자는 이것을 빨랫줄 호흡이라 칭하겠다. 빨랫줄에 걸린 것 처럼 ‘덜커덩’하는 느낌으로 호흡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어 시작된 <나목(裸木)에게>에서는 하얗게 꾸며진 무대에서 무용수들 3명이 흰색 의상을 입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자아를 투영했다. 아버지를 은유한 나목(裸木)은 보디 페인팅을 한 무용수가 간간히 무용수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리움의 대상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입춤의 여성미를 표현하고 싶었다는 창작품에서, 입춤과의 공통점이란 팔로 간간히 머릿사위를 감는 모습 밖에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공연에 호의적인 미소를 보내고 싶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안무자의 작품에 대한 애정, 고심하여 임한 흔적, 성실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연습을 통해 단체로 같은 동작을 하였을 때 상승되는 미적 쾌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일반관객 유치,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안무자와의 대화시간은 국립무용단의 <대화가 있는 무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갑(甲)>
어둠 속에서 트렌치 코트를 입은 반라(半裸)의 남자가 주머니에서 여자구두를 꺼내들고는 무언가를 찾아 객석을 휘젓고 돌아다니다 뒷문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세 남자의 ‘훔쳐보기’가 시작된다.
김정웅 안무의 <갑(甲)>은 자신의 아내와 나란히 누운 역신을 보고 느꼈을 처용의 심상에 근거를 두고 안무하였다. ‘갑(甲)’이란 갑남을녀(甲男乙女)의 사자성어에서도 보이듯이 평범한 남자를 말한다. 처용은 역신을 용서하고 밖에나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마음을 추스렸지만, 오늘날의 평범한 현대인이라면 그 상황에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상상하며 그렸다고 안무자는 밝힌다.
무대 오른편에 덩그러니 놓인 유리병 속의 금붕어도 그것과 맥을 같이 한다. 평범한 금붕어는 평범한 남자를 나타내기는 한편, 또 유리로 완전히 노출되어 인간에게 관찰당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관찰당하는 것은 금붕어 만이 아니다. 인간도 금붕어에게 관찰당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이렇게 서로 훔쳐보기를 제시한다. 사실 훔쳐보기라는 주제는 인간의 관음이라는 욕망이 발견된 이래 무수히 제시되어왔다. 그러나 우리나라 무용계에서는 성에 대한 것이나 변태성을 가진 관음에 대한 주제는 터부시되어, 작품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었다. 김정웅은 이런 민감한 주제를 벗지않고도 야하게, 변태스럽지 않으면서 공감가게 다루었다. 그것도 유머를 빼먹지 않고.
작품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훔쳐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의 표상이다. 절정에서 몽환적인 아베마리아가 흘러나오며 방을 엿보던 남자는 ‘제8요일’의 다운증후군 환자 조지처럼 순수해진다. 비틀어진 욕망의 절정에 다다르면 순수해지는 것일까?
작품의 중간 조금 느슨한 부분도 있었지만, 관음 도착 여성용품 페티쉬 등 자극적인 소재와 주제를 외설적이지 않으면서도 정직하게 조망한 작품은 참신했으며, 이미 관음적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훔쳐보기를 행하는 남자들을 관객이 훔쳐보는 중첩된 구조도 꽤 흥미로운 무대였다.


글/만두매니아 jutte96@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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