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W] 전미숙 무용단
소통의 긴장감과 피로감
‘BOW’ 전미숙 무용단
2017.9.9.-10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작품 ‘BOW’는 인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탐색한다. 특히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는 한국적 인사는 타인에 대한 공경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몸에 배어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위이기도 하다. 한국과 일본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나라의 문화를 다른 문화들과 비교해 보면, 인사의 형태가 그러하듯이, 자신을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는 예의를 강조하는 다양한 모습들이 생활 곳곳에 더 많이 존재하는 것도 같지만, 이러한 체화된 일상적 행위 양식들이 반드시 배려의 마음까지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정말 예의를 갖추고 부드럽게 소통하는 문화를 가졌나? 오히려 그 반대는 아닐까?
안무자 전미숙의 질문은 인사라는 행위 뒤에 있는 복잡한 심경에서 출발한다. 공손한 인사 뒤에는 오히려 타인과 소통하는 어려움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문화가 예의를 강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의례적인, 진심이 없는 인사를 끊임없이 하며 소통은 진솔하지 못한, 그래서 계속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야 하는, 피곤한 사회인 것이다.

<BOW> 작품 사진 – 컨셉컷 © gunu Kim
이 작품의 주제 동작은 인사하기, 그리고 종종걸음이다. 인사하기는 타인을 만나는 행위 형식 그 자체를, 종종걸음은 그들의 관계 혹은 태도를 표현한다. 인사를 하고 잔걸음으로 다른 구도를 향해 나아가고 다른 관계들과 만나고 다시 인사를 하고 잔걸음으로 헤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정적이고 차분한 인사가 어쩐지 불안하고 불편해 보인다. 편한 상대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 협상을 해야 하는 사람, 반감이 있는 사람을 다 만나며 살아가는 것이니, 인사 한 번조차도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모르겠다. 내 본모습을 어느 정도 사회적인 얼굴로 위장하고 내 욕망도 형식적인 행위로 어느 정도 가리고 소통이라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 부채와 찻잔을 도구로 이용한 춤들이 이런 것들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차가운 만남들 간의 긴장감을 보여주는 듯,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수직 수평 구도의 군무가 많았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한 안무자의 풍부한 경험이 이런 작품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춤 작품은 기본적으로 집단이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안무자가 작가로서 겪은 어려움이 상당했을 것이고, 유명한 예술가이기에 겪는 어려움, 교육자로서 많은 학생들을 대하기에 겪는 어려움 등,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피로한 평화주의자의 자화상’이 작품의 기본적 분위기이다. 매우 공감이 되었다. 아, 사람들 대하는 게 피곤해서 증발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정서적인 공감 외에 이 작품이 가지는 장점은 군무의 구성과 무용수들의 기량이다. 탁월한 안무가의 관록은 역시 군무를 어떻게 구성하는가에서 보여지는 듯 하다. 작품의 전체 기조가 되는 소통의 긴장감과 피로감을 유지하면서 장면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다채로운 구도가 펼쳐졌다. 흥미로운 움직임들이 많았고, 이것들의 변주 또한 재미있었다. 이를테면 한 다리를 들고 나머지 한 다리로 지탱하면서, 들어올린 다리의 뒷꿈치에 찻잔을 올려놓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위태로운 다도가 이 작품의 주제를 시적으로 표현해주는 듯 했다. 이런 상징적인 동작들이 몇 군데에서 보여졌는데 조금 더 강화되어도 좋을 것 같다. 이를 소화해내는 무용수들 역시 기량 면에서 최고였을 뿐 아니라 개별적인 매력들이 느껴져서 좋았다. 동작과 장면을 해석해내는 능력들이 모두 뛰어났다. 의상 역시 독특하면서 군더더기가 없어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음악이었는데, 이 작품의 음악은 안무가 김재덕이 맡아 화재가 됐으나, 음악이 춤을 압도하는 듯 강해서 오히려 음악 자체가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단아하게 춤추는 부분에서조차도 음악이 쾅쾅거리며 나오니 조화가 되지 않는 느낌도 들었다. 안무가 기승전결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에 비해, 음악은 일정한 리듬만 반복되는 것들의 집합이라 음악적 완성도는 많이 부족했다.
또한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부정적인 공감대를 만들어주는 장면들의 배열로만 작품이 끝나는 것도 아쉽다. 즉 ‘면이 살도록 인사 잘 하고 사는 것이 힘들다, 그런데 그래서?’라는 부분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안무자가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 그래서 어떻다는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마쳐버린 느낌이 들었다. 인사라는 심정적으로 어려운 행위 그 자체만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다면 좀 더 대중적인 공연으로 구성해도 좋았을 것이다. 무용수들의 매력을 더 전달할 수 있는 2인무, 3인무 등도 더 넣고, 구체적인 일상적 상황들을 무용수들의 경험 속에서 끌어낸 장면들도 더 넣었다면, 현대무용이 낯선 대중들에게 훨씬 호소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장면들의 나열을 하나로 종합해주는, 안무자가 정말 표현하고자 하는 철학이 드러나면 좋았을 것이다. 여러 요소들이 훌륭하고 흥미로웠지만, 무언가 빠져있는 듯한, 반짝거리는 세련됨마저 그래서 아쉬운 느낌이었다.
글_스윗초코
춤추는거미 ds@dancingspid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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