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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2.02.07 00:47 | 조회 9498

    삶 속에 끼어든 예술, ‘커뮤니티 아트’



    아직도 예술이 부유한 계층만이 향유하고 즐기는 고급문화라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예술경향이 예술사의 한 패러다임이었기에 부정할 수는 없다. 요즘 이와 반대로 예술사의 경향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대중을 위한 예술의 역할이 확대되고, 대중이 만들어가는 예술이 소통의 손을 내민다. 문화기반사회(Culture-based Society)로서 춤의 역할이 소통의 구실을 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지금 커뮤니티 아트에 열광하고 그것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커뮤니티 아트의 매력이 궁금하다.  


    미디어 속의 커뮤니티 아트

    먼저, 우리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TV매체 속에서 커뮤니티 아트를 찾아볼 수 있다. 작년에는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댄싱 위드 더 스타’,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라는 춤과 관련한 TV프로그램(2011년 방영)이 심심찮게 방영되었다. 세 프로그램 모두 ‘춤'이라는 소재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공통된 골자였다. 시청자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춤’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전문가다운 화려한 춤 솜씨가 아니어도 관객과 시청자는 감동을 한껏 받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도 커뮤니티 아트를 찾아볼 수 있다. 다큐영화 피나바우쉬의 ‘댄싱드림즈’, 원작 마오쩌둥의 마지막 댄서(실화)를 영화화 한 ‘마오의 라스트댄서’가 있다. 춤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춤 공연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다큐로 만든 ‘댄싱드림즈'는 커뮤니티 아트의 정확한 실례를 들어주는 영화이다.

    '댄싱드림즈'는 춤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의 개인적인 다양함 경험들을 내러티브로 엮어내었다면, '마오의 라스트댄서'는 중국출신의 유명 발레리노의 삶을 엮어내었다. 클래식 발레를 마음껏 발산 할 수 없는 사회적 체제 속에서 예술가의 가슴 시린 결단은 결국 망명이다. 바르시니코프의 춤에 대한 열정을 그린 ’백야‘와 오버랩 되는 영화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발로

    커뮤니티 아트는 문화예술교육으로서 먼저 접근하는 것이 순서이다. 치유와 회복이라는 목표가 잠재되어 있기에 교육이라는 수단이 들어간다. 집단(대상)의 특이성이 커뮤니티 아트에 내제되어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 커뮤니티 아트의 매력적 요소이다. 여러 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의 활동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실현되고 있다. 이것은 예술과 괴리된 삶에 안정적인 형태로 접근(대상과의 만남)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2011, SIDANCE(서울세계무용축제)프로그램 중 <꿈!틀! Dream a Motion>은 커뮤니티 댄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소년 감성키움 프로젝트 ‘상상학교’ 10개 팀 학생들이 공연을 펼친 무대였다. 서툴기는 하지만 무대 위에서의 절절한 움직임으로 진정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서울발레씨어터 ‘홈리스(homeless)를 위한 발레교육’ 또한 특별하게 시도된 케이스이다. 모던프로젝트2011 에 홈리스가 출연하기도 했다. 적막한 무대 위 무용수들이 현란하게 춤을 선사하지만 그들은 워킹으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낸다. 현란한 몸짓과 움직임이 아니어도 그들의 출연은 반갑기만 하다. 서울발레씨어터 예술감독 제임스전은 홈리스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로 ‘춤’을 이용했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예술을 위해

    커뮤니티 아트는 ‘예술‘이라는 소재로 개인의 내러티브를 만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개인의 진정성은 만인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일으키고 소통 가능한 플랫폼을 자연스레 구축한다. 그러나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에서 끝나버리면, 커뮤니티의 속성을 잃는다. 지속적인 예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기적인 시간이 따르기 마련이고, 진심어린 관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술단체와 예술가, 그리고 참여자들의 활발한 상호작용만이 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참된 소통의 의미를 발견하였다면, 그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예술의 기로에 섰음을 방증해주는 척도임이 분명하기에 아비투스적인 예술(만인에게 예술이 정착됨)을 기대해볼 만하다.



    글_아멜리 ds@dancingspider.co.kr
    사진_ 네이버, 서울발레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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