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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08.11 10:45 | 조회 9307

    발레리NO가 남긴 웃음의 뒤에서..



    개그콘서트에 한 코너인 '발레리NO', 남자 개그맨 4명이 발레리노 타이즈를 입고 나와서 부끄러운 듯 서로의 성기를 가리기에 급급한 제스처를 취한다.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열심히 땀 흘리는 발레리노가 아른거린다. 개그는 개그일 뿐이지만, 왜곡된 발레리노의 시선은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수영복 보다 더 민망한 것이 발레리노 의상이다. 왕자 재킷에 성기가 도드라진 하얀 타이즈를 입고 나오니 참으로 이상한 복장이긴 하다. 발레리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튀튀라는 것이 발레의 대명사가 되어 크게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사실 우산모양 튀튀에 버젓이 팬티가 보이는 꼴이다. 그런데 왜, 발레리노 의상만 개그의 소재가 되어야 하는가.



    발레 역사가 말하는 의상 역사

    약 350년 전인 17세기 후반까지 남성 무용수들만 발레에 등장했다. 또, 프랑스 혁명 전까지 남성 무용수들도 깃털로 머리를 꾸미고, 여성무용수처럼 철사가 달린 스커트 또는 토넬레트(tonelet)를 입었다.

    18세기의 무용가 노베르는 무대 의상을 새롭고 간편하게 만들자고 주장하게 된다. 그리하여 카마르고가 자신의 의상을 자르고 치마 밑으로 발의 화려한 동작을 선보이면서 의상은 급격히 변화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튀튀의 길이는 짧아졌고 테크닉은 발전했다.

    발레는 크게 낭만발레와 고전발레, 현대발레로 본다. 사조가 변화하면서 의상의 변화는 물론 남성 무용수의 역할의 변화에 주목해 보자. 낭만 발레는 여성무용수가 중심이다. 1830년대 프랑스에서 <라 실피드>, <레 실피드>, <지젤>과 같은 작품으로 여성무용수가 로맨틱 튀튀를 입고 토슈즈를 신게 되었다. 이때 남성무용수는 거의 여성의 보조역할이었다.

    이어 고전발레가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데, 발레의 3대 고전이라고 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0),<백조의 호수>(1892), <호두까기 인형>(1892)가 이 시기의 춤이다. 여성무용수는 클래식 튀튀를 입었고, 남성 무용수의 테크닉과 비중이 상당히 늘어나게 되었다.

    현대 발레는 형식의 파괴, 움직임의 변화로 의상과 신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특히 1909년 디아길레프가 조직한 ‘발레 뤼스’발레단의 작품은 여성중심의 발레에서 벗어나 남성무용수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포킨, 니진스키의 안무는 혁신적이었으며, 이후 남자 무용수의 활동에 초석을 마련했다.  





    더없이 아름다운 남자의 몸



    단 한번이라도 발레 공연을 제대로 봤다면, 더 이상 발레리노 의상이 개그의 소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대중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에 개그로 비춰지고 있다. 발레뿐만 아니라 무용수의 아름다운 몸을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봐야 할 때이다.
    이원국, 김용걸과 같은 최고의 발레리노들이 살색 팬티타이즈만 입고 찍은 사진이 머릿속을 스친다. 10년 전에 봤던 그 사진은 강수진의 발가락 사진 못지않게 가슴 속 깊이 남았다. 바디 빌더와 다른, 아니 비교도 할 수 없는 섬세한 근육들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은 근육들의 용솟음 속에서도 하나의 그림 같은 동작의 조화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절로 나오게 한다.  

    ‘발레리No’라는 개그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말해주듯 잘 만들어진 코너다. 발레리노가 개그의 소재가 되어 가슴 한켠이 쓰라리지만, 대중과 거침없이 만나기 위한 발판이라고 위안을 삼아본다. 발레리NO가 남긴 웃음 뒤에서, 발레리노의 진면목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그림자처럼 주의를 맴돈다.



    글_마징가  ds@dancingspider.co.kr
    사진_네이버, 발레의 탄생, 발레의 베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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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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