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디댄스

춤추는거미 | 2004.09.22 14:00 | 조회 5011

한국 인디댄스
- 태도로서의 모더니즘, 양상으로서의 포스트 모더니즘 -

까페, 라이브 클럽, 야외공원, 집회, 소극장 할 것 없이, 어디든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라면 찾아가 낯선 모습으로 춤추는 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패러디, 풍자, 관객과의 소통, 충격요법,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적 움직임, 누구나 생각하는 현실의 문제들, 혹은 상상속에서만 가능한 꿈들을 담아, 하지만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찾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치는, 뭔가 다른 춤꾼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들은 인디댄서들이다.


사실 인디댄스라는 용어는 순전히 한국적 상황에서 발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서구권에서 ‘인디댄스’라고 하는 말은 주로 ‘레이브, 테크노 클럽 문화, 클러버들의 행동양식’과 관련되어 언급되는 용어이다(서구권에서 독립적 방식으로 작업하는 춤꾼들은 너무나 보편적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따로 ‘독립’이라고 범주화 할 필요가 없기 떄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용어는 타 예술 장르, 특히 인디밴드, 독립영화 등에서의 자연스러운 영향으로 붙여진, ‘90년대 중반 이후의 소수의 새로운 춤 경향’을 일컫는 것이 되었다. 제반 인디 문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생산과 유통에서의 독립적 방식, 대중문화, 민중문화, 고급문화와의 차별성’이라면, 이러한 새로운 춤 경향에 ‘인디’라는 말이 붙은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즉, ‘제도권 주류 춤의 생산과 유통방식에서 벗어나 새롭고 독특한 자신들만의 춤세계를 추구해나가는’ 춤의 경향을 대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러한 춤꾼들이 지금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로 이름이 바뀐 ‘독립예술제’에 다년간 참여하여 어느 정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 이유도 포함될 것이다


김민규는 한국 인디문화 발생의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문화외적으로는, 1)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90년대에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시민권력이 신사회운동을 성장시키고 다변화시키는 가운데, 집단적 대립에서 개별적 실존으로 중심을 옮겨간 정치적 변동 2) 근대성 속의 전횡적 이성주의의 반성으로서 나타난 포스트 모던의 ‘평균적 질서의 중심에 대한 주변의 도전’ 3) 정보통신기술의 확산에 따른 개별자의 강조와 새로운 방식의 네트워킹 을 들고 있다.

문화 내적으로는 1) 70-80년대 민중문화운동을 통한 저항문화의 형성과 표출적 계기 2) 1990년대 등장한 신세대 문화론에서의 소비주의의 확대와 그에 대한 반성 3) 문화예술의 진정성에 대한 기존 예술계의 회의와 반성으로 들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춤세계’라는 한정된 문화 내적 맥락을 더 살펴본다면, 인디댄스가 인디문화속에서, 또한 한국무용계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 명확해질 것이다. 첫째, 한국 무용교육의 기형적 성장을 들 수 있겠다. 해방 후 신무용이 진정한 근대성을 획득하기도 전에 전쟁과 사회혼란 등을 또다시 겪으면서 문화예술 중에도 수요가 낮은 춤 분야는 차분히 성장해나갈 수가 없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 1963년 이화여대에 한국 최초의 무용과가 생기고 이후 많은 대학에 무용과가 신설되어 현재까지 대량의 졸업생을 양산하고 있으나, 전통적인 도제 교육 방식이 대학교육에 그대로 적용되면서 진정한 무용전문인을 키워내기 힘든 토대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또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이라는 삼분법적 전공 선택 방식은 대다수의 춤꾼들에게 움직임의 벽을 만들어놓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용과 졸업자는 기하학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지만, 이미 제도권의 중심의 되어버린 구세대 춤꾼들의 꿋꿋한 ‘자리 지키기’ 덕분에 취직도 할 수 없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도 없는 백수들만 늘어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무렵, 의미없이 사라져가는 무용과 졸업자들의 사회적 낭비가 과잉으로 치달아갈 때, ‘더 이상 이놈의 나라에서 춤추며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소수의 백수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터져나오게 되었다. 즉, 한국의 무용계 속에서 계속 누적되어온 문제들이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할 때 곪아 터져나오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60-70년대 미국의 저드슨 댄스그룹을 위시한 포스트모던 댄스 운동과 한국의 인디댄스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저드슨 그룹의 작업방식이나 작품 성향들(김태원은 저드슨 그룹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1) 일상적 움직임의 수용에 대한 춤언어의 확장 또는 춤동작에 대한 진지한 숙고 2) 현대춤 공연공간의 내외적 확대와 해방 3) 해프닝적 방법을 이용한 춤추는 이와 보는이, 춤의 표현과 타예술 표현과의 상호의존적 협조와 교류 이다. 이는 정확히 인디댄스의 면모와도 일치하고 있다)은 3-40년이나 지난 지금의 한국 인디댄스의 양상과도 다르지는 않지만, 저드슨 운동이 현대무용을 하나의 문화산업으로까지 성장시킨 미국이라는 풍요로운 춤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이행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운동이었다면(마사 그레이엄이 ‘모던댄스’라는 말을 보급하고, 머스커닝햄이 시공간의 개념을 혁신시키고, 폴 테일러가 ‘가만히 서서 움직임조차 없애버림으로써’ 근대적 춤 기획의 실험들이 일단락 된 미국이라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포스트 모던이 등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의 인디댄스는 오히려 기형적인 한국의 춤 교육 시스템에서 낙오된 백수들이 ‘도대체 춤이 뭐길래?’라며 학교와 극장 밖으로 뛰어나오게 된 사건이 계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인디댄스는 어느 서구사회의 아방가르드와도 구별되는 점이 있다.

둘째, 우물 밖으로 나가 본 세대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받게 된 영향을 들 수 있다. 즉, 국내 무용계를 떠나 유학이나 외국 춤꾼들과의 작업 등을 경험한 세대들이 국내로 돌아오면서, 실제 춤 세계의 기반이 단단한 곳에서의 작업방식과 태도들을 어떤가를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일으킨 것이다. 소재나 스타일로는 특히 안은미의 펑크 스타일이 고급예술의 춤 권위를 깨버린 강렬한 자극이 되었고, 이 외에도 작업방식의 민주주의(안무자와 무용수의 고용주/고용인적인 임금 관계, 스탭들과의 동등한 협력자적 관계, 유통에 있어서의 정당한 방식)를 보여주는 ,소수의 선배들이 1990년대 예술백수들에게 새로운 지침을 던져주었다.

셋째, 1970-80년대 민중문화운동 속에서 나타난 춤의 저항적 계기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탈춤운동이나 마당극 운동은 그 시작은 소수의 엘리트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이후 노동자 문화 운동 속에서의 율동패라든지, 대학 집회들 속에서의 집체극 등을 통해 더욱 대중화되고 정치화되었다. 춤 전공자들 중에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 이들이 있었는데, 6월 항쟁 때 한풀이 춤으로 정치적 발언을 온몸으로 보여준 이애주, 199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민예총 진영에서 저항적 작품활동을 해왔던 춤패 ‘불림’ 등이다. 소수지만, 이러한 사회 참여적인 춤꾼들이 존재해왔다는 것은 현재의 인디 댄서들에게도 든든한 용기가 된다. 또한 실제 인디 댄서들 중에는 억압적인 무용과 생활에 적응을 못했거나(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낙오자 집단일 뿐이라고 봐서는 안된다), 그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냈거나,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해 온 이들이 많다.

넷째, 대중문화에서의 춤의 위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힙합댄스, 댄스스포츠, 재즈댄스 등이 대중문화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면서, 춤이 더 이상 하찮거나 어두운 문화가 아닌, 건강하고 열정적인 생활 속의 문화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중들의 달라지는 춤에 대한 감수성을 어떻게 껴안고 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춤 전공자들도 하게 되었고, 더이상 춤이 어렵고 권위적인 것으로서 극장 안에 갇혀 가족잔치나 자위행위 에 다름아닌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디 댄서들이 선택한 것은, ‘쉬운 춤’, ‘대중들과 만나기 쉬운 장소’, ‘타예술과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춤언어 자체가 가진 어려운 추상성을 상쇄해 나가는 것’, ‘관객과의 참여와 누구나 춤 출 수 있다는 명제를 온몸으로 보여줌’ 등이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충분히 인디댄스를 ‘아마추어리즘’으로 오해할 만한 소지가 되지만, 분명한 것은 인디댄스는 전문적인 훈련과정을 거친 춤꾼들의 반성적 태도이자 행위이며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타나게 된 춤꾼들의 작품이나 작업 방식은 어떠할까? 기본적인 성향은 김민규가 분석하고 있는 인디문화씬의 성격과 동일하다. 즉, 인디문화의 시간성과 공간성은 질서와 무질서의 세계를 진동하는 경계의 세계에 놓여 있으며, 저항적이고 반성적이며 과정적인 태도이자 행위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디 문화의 이념적 특징은 이질성, 개별성, 다성성, 다양성, 디오니소스적, 표출주의로 드러난다. 인디의 정서는 탈권위, 자의식과 나르시시즘, 성찰성, 미학주의와 반세련화, 매니아주의라고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인디문화씬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담론들이 형성되어 있고 생산자와 수용자의 층이 생겨 있는 상태이지만, 무용계는 주류 무용계 자체도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니, 인디 댄스라고 해서 딱히 저항의 대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인디 댄스만의 완전히 새로운 제작방식이나(주류 무용계에서 동문단체에 기생하는 춤꾼들과는 달리, 이들은 완전히 스스로 서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곤란이 더욱 심한데, 그렇기에 기금을 받지 않으면 사실상 새로운 작품을 기획할 수 없다), 혹은 매니아적 관객을 만나기가 힘들다(이들의 공연에서도 고정팬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무용이라는 예술이 원래 대중적 인기와는 상관이 없다보니, 인디 댄스라고 해도 특별히 다를 것은 없는 것이다. 작품의 소재나 내용 또한 최근 주류 무용계의 ‘가벼움’의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별다를 바 없어 보이기도 할 것이고, 새로운

안무 구성이나 몸짓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 춤꾼 또한 어디에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들의 태도나 정신은 ‘인디적’이다. 왜 권위를 무너뜨리고 가벼워지길 원하는지, 왜 춤언어와 극장성을 해체하려하는지, 왜 심한 궁핍에 시달리면서도 억척스럽게 공연하는지, 왜 타예술 장르와 평등하고 긴밀하게 교류하려 하는지, 왜 관객층을 넓히려고 애쓰는지, 왜 소수자들의 네트워크를 중요시하는지, 왜 끊임없이 새롭게 인식되길 원하는지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이들에게는 강하게 존재한다. 이른바 이들을 강력하게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은 결국 모더니티이다. 춤에서의 모더니티란 움직임이라는 춤예술 매체를 춤꾼 자신의 언어로 창조하여 스타일화 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고민은 순전히 모더니즘적인 것이며(포스트 모던의 시대에 모더니즘을 획득하려는 이 애끓는 움직임은 역시 한국적 상황이기 떄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 양상은 포스트 모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 인디문화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2001,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김민규
<후기 현대춤의 미학과 동향>1992, 현대미학사, 김태원


글/허유미 youme9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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