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기록과 현대의 무용기보법 (2)

춤추는거미 | 2005.06.20 21:45 | 조회 7153
무용기록과 현대의 무용기보법 (2)

우선 동작의 3차원 공간 정보를 2차원 환경, 즉 사진 인화지나 TV화면과 같은 평면에서 재연하게 되면 눈에 보이는 면 이 외의 동작 정보는 알기 어렵다. 또한 관절들이 복잡하게 운동하는 동작의 경우 한 쪽 방향에서 3차원의 공간 정보를 파악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일단 사진은 시간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므로 재연의 도구로 고려하지 않기로 한다면,) 비디오 기록을 보며 춤을 재연하는 경우 우리는 화면의 무용수를 거울 보듯 마주보고 신체 각 부위가 동시에 이뤄내는 3차원 공간, 시간의 정보들을 동작이 진행되는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것이 무척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용기보법은 어떨까? 일단 무용기보법의 단점은 기호들이 대부분 ‘무용’스럽지 않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장점은 비록 2차원 평면에 그려지기는 하지만 상징기호를 이용함으로써 움직임의 3차원적인 공간, 시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악보의 음표들이 ‘음악’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진 않지만 약속된 체계, 즉 음표의 모양과 그들의 오선지 상의 위치 등을 통해 음악으로 재현될 수 있는 음과 박, 리듬에 관한 기본 정보들을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용기보법의 또 다른 장점은 동작 시간에 대한 정보는 담고 있되 무보 자체는 시간의 변화와 상관없는 유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즉 비디오를 이용할 경우 순간 지나간 동작을 쫒아 거듭 반복해서 돌려봐야 하며 지나간 움직임의 정보들을 잔상(afterimage)에서 추적해야 하는 대신 유형의 무보를 이용하면 하나의 동작에 대한 정보들을 파악하는데도 충분히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모든 사진과 비디오는 특정 공연(실현화)에 대한 기록물이라는 문제다. 앞서 설명했듯 무보는 한 작품의 기본 구조를 담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그 작품의 모든 공연(실현화)에서 첨가될 예술적 해석과 관계없이 그 작품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연주하고 서울시립 교향악단도 연주한다고 하자. 같은 곡이지만 지휘자나 연주자들의 곡 해석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연주가 서로 다른 곡이 아니라 같은 ‘전원 교향곡’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기본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만약 음악에 악보가 없었다면, 그래서 특정 지휘자가 특정 단원들과 함께 특정 시기에 연주한 공연실황 CD들만이 각기 독특한 곡 해석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버전을 제시하고 있다면, 이들 중 ‘맞는’ 음악은 도대체 어떤 것이며 따라서 이 후 재연 작업의 기준이 되어야하는 음악은 어떤 버전일까? 무용도 이와 같다. 무용에서 사진이나 비디오 기록은 특정 무용수가 특정 시기에 당시의 역량을 바탕으로 재현한 일종의 ‘해석된 버전’에 대한 기록이다. 따라서 이들이 한 작품의 기준을 제시하는 기록으로 인식되기에는 이러한 개념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용기보법은 ‘해석된 버전’ 이전의 ‘원 작품’을 기록할 수 있는가? 무용은 음악과 달리 안무자가 자신의 작품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며 보통은 무보기록자가 안무자 옆에서 안무 과정을 함께하며 안무자의 의도에 충실한 보표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비디오 기록으로는 무용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동작만 볼 수 있지만 안무 과정에 참여했던 무보기록자는 그 움직임이 조금 후에 출현할 상대 무용수가 대기하고 있는 곳을 바라보도록 주문하는 안무자의 의도가 있었다면 이에 맞게 움직임을 묘사할 수 있다. 무보는 이렇듯 해석자 보다는 창작자의 편에서 동작을 묘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 현대의 무용기보법의 필요성, 역할, 가치 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진이나 비디오 기록이 무보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앞의 지적들이 결코 무보만이 무용 재연을 위한 유일한 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보는 춤 자체를 보여주진 않지만 자세하게 뜯어볼 수 있는 정보들을 담고 있다. 반대로 사진이나 비디오는 자세한 정보들을 알려주진 못하지만 실현화 된 결과로서의 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허락된 다양한 매체가 가진 특성과 한계를 인식하고 이런 가능한 매체들의 장점을 보완하여 무용기록에 활용할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하다.



그림)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서 개발 중인 라바노테이션을 시각화 하는 프로그램 「라반 댄서(LabanDancer)」
(제2회 한국무용기록학회 국제학술심포지엄 「진화하는 컴퓨터 춤 테크놀로지」중에서, 미국 Ilene Fox 발표)


지금까지 살펴 본 무보, 사진, 비디오 이외에 요 근래 디지털 시대를 맞아 움직임을 컴퓨터로 기록하고 재연하고자 하는 시도들도 있다.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올챙이 송'의 애니메이션만 보더라도 움직임은 비디오를 재생한 듯 자연스러운데다가 움직임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3차원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3차원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으로 완성되기도 하지만 더욱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원하는 경우 주로 사람에게서 움직임 정보를 직접 가져오는 모션 캡쳐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 모션 캡쳐의 경우 신체의 각 부위가 3차원 공간에서 좌표를 옮기면서 여기에 걸리는 시간의 변화 등을 몸에 부착한 센서를 통해 모으고 이 정보들을 컴퓨터에서 재구성하여 3차원 움직임으로 재현하게 된다. 요 근래 모션 캡쳐 기술이 엄청난 고가의 장비를 필요로 한다거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파일 사이즈가 크다는 점 그래서 인터넷상에서 애니메이션 파일을 이용한 컨텐츠 개발에 제한이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되면서 이를 대체할 기술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요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무용기보법이다. 무용기보법은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X, Y, Z축의 3차원 공간과 시간으로 분석, 계산하는 기본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움직임 정보들을 동영상 파일이 아닌 텍스트 파일로 대체할 수 있는 스크립팅 환경이 가능하다.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는 무용기보법을 이용해 동작 정보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래의 무용 기록은 어떤 모습일까? 혹시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가 처음 시작했을 때 로봇 알투디투(R2-D2)가 비추는 레이아 공주의 3차원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달라고 반복해 얘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공중에 분사된 3차원 입체 영상이었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3차원 입체 영상으로 재현되는 무용기록물이라는 꿈을 꾸게 한다. 가능할까? 미래의 어느 날, 감상하고 싶은 무용작품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3차원 입체 영상 재생기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누르면 책상 모서리에 설치돼있던 3차원 입체 영상 프로젝터를 통해 손가락 크기의 입체 무용수들이 공간에 투사된다. 이들은 특정 공연에서 촬영된 실제 인물들이 아니라 무용기보법을 이용해 동작 정보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전환한 가상의 무용수들이다. 따라서 특정 공연의 기록물이 가질만한 “바로 그 당시”에 대한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무용수들이 책상을 무대 삼아 열심히 춤추는 모습을 감상하다가 그 중 한 무용수의 특정 움직임이 궁금해지면 잠시 ‘화면 정지’를 누르고 그 무용수의 영상 가까이에 손을 댄다, 그러면 뒤 쪽으로 그녀가 지금 실행하고 있던 동작의 자세한 무보가 나타난다. 재생기에서 인쇄 버튼을 누르면 무보가 인쇄되어 나오고, 복잡해서 잘 안 읽히는 무보 부분은 무용수가 재생하는 움직임을 보며 감을 잡는다. 어떤가. 멋지지 않은가?  



글/ 유시현(오하이오 주립대 박사, 라반 움직임 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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