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기록과 현대의 무용기보법 (1)

춤추는거미 | 2005.06.10 12:01 | 조회 8383
무용기록과 현대의 무용기보법 (1)

고구려 무용총의 무용도를 보면 우리는 무용수들이 특정 대형으로 서서 특정 의상을 입고 특정 동작을 함께 하고 있으며, 옆에는 일곱 명의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벽화는 역사적으로 고구려 춤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다. 그러나 춤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가? '어떤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출까?,' '어떤 빠르기로 동작을 하고 있을까?,' '전체 춤의 길이는 얼마일까?,' '이 동작의 바로 전 동작은 뭐였을까?' 등등 만약 이 춤을 복원하고 재연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까?




무용기록의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있었던 사건에 대한 흔적을 남기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재연의 문제를 염두에 둔다. 쉽게 말하자면 베토벤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그림으로는 악기 편성이 어떻게 되어 있고, 연주자들이 어떤 의상을 입고 어떤 위치로 앉았으며, 어떤 공간에서 연주하고 있는지와 같은 주변 정보들은 알 수 있을지 모르나 정작 무슨 음악을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행히 그들에게는 음악 재연을 위한 기록으로 '악보'가 있다. 그렇다면 무용은? 같은 맥락에서 무용 재연을 위한 '무보'는 가능한가?


우선 무용에 대해 생각해보자. 무용은 복합적인 현상이다. 눈에 보이는 외적 요소들만 생각해도 무용수 인원, 성별, 신체동작, 안무, 음악, 소품, 의상, 조명, 장치, 공연장 환경 등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고려된다. 게다가 무용은 춤의 내용 및 의미, 목적, 상징성, 안무자의 의도, 무용수의 역량 등 기타 내적 요소들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하나의 무용(또는 무용 작품)을 '단순한 사건'으로 보고 이 모든 요소들을 모두 아우르는 무보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재연을 염두에 둔 무보를 만들고자 한다면 우선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무보는 무용이 갖는 여러 다양한 요소들 중 무엇보다도 무용이 되기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담고 있어야 한다. 동시에 각 무용이 서로 구별될 수 있도록 기준도 제시해야 한다. 무용은 인간의 움직임을 통해 재현(representation)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신체 움직임은 무용의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다. 또한 신체 움직임들의 연결은 무용의 기본 구조(structure)를 이루며 바로 이 무용 구조가 각각의 무용을 서로 다르게 분별하는 기준이 된다. 쉽게 비유하자면, 음악의 필수 조건은 음과 박 이지만, 음과 박을 이용해 어떤 구조를 이뤄내느냐에 따라 몇 천, 몇 만 개의 클래식 음악, 가요, 팝송, 민속 음악 등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무용 기보법은 신체가 시간, 공간 속에서 만들어내는 움직임을 기록할 수 있고 그 연결을 통해 무용 구조를 알 수 있어야 기본적인 무보의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 베네쉬 동작 기보법(Benesh Movement Notation), 에쉬콜-바크만 동작 기보법(Eshkol-Wachman Movement Notation)과 같은 신체 움직임을 기록하는 '동작 기보법'들이 무보를 작성하는데 사용되는 이유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있다. 20세기 기술문명의 발전과 함께 우리는 사진이나 비디오 같은 새로운 방법들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굳이 무용기보법이 필요할까?
사진은 이전의 무용그림이나 벽화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생생한 현장감을 전한다. 그러나 사진이 갖는 가장 큰 단점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는 점이다. 움직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므로 신체동작에 대한 정보 중 시간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정지된 포즈와 포즈 사이의 단절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채우고자 한다면 그만큼 더 많은 숫자의 사진 컷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비해 비디오 기술의 발전은 무용기록에 있어 상당히 의미 있는 성취이다. 무엇보다도 과정으로서의 움직임을 보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발전이다. 그러나 있었던 사건에 대한 흔적이나 기록이 아닌 '재연'의 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비디오 기록물 역시 약간의 무리가 있다. 현실적인 문제들만 짚어 보더라도, 긴 의상에 가려진 팔 다리 동작을 알 수 없다던가, 어두운 조명 때문에 무용수가 어렴풋이 보인다던가, 많은 무용수들이 다 같이 모여서 제각각 움직이는 경우 뒤 쪽에 선 무용수들 동작은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특정 무용수만을 카메라가 따라다녀 다른 무용수들의 동작을 잘 알 수 없다던가, 반대로 너무 멀리서 카메라가 계속 전체를 비추는 바람에 각 무용수의 동작이 쉽게 인식되지 않다던가. 원래 즉흥 부분인데 비디오 기록만으로는 즉흥인지 모를 수도 있고, 원래는 어렵고 복잡한 동작인데 무용수가 당일 컨디션이 안 좋아 비디오 촬영 시 쉬운 동작으로 바꿔 공연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진과 비디오 기록의 문제를 압축하면 1) 3차원 공간의 정보를 2차원 환경(종이, 화면)에서 재연한다는 것과 2) 모든 사진과 비디오는 특정 공연(실현화)에 대한 기록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서 계속된다.


글/ 유시현(오하이오 주립대 박사, 라반 움직임 연구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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