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춤잔치, 왕처럼 즐기세요~ (제13회창무국제예술제)

춤추는거미 | 2005.05.31 01:19 | 조회 5208
풍성한 춤잔치, 왕처럼 즐기세요~

제13회 창무국제예술제- 왕의 춤을 위한 주제와 변주



올해로 13회째를 맞고 있는 창무국제예술제는, 해마다 세계 여러 민족 문화를 현대성의 지평 위에서 다시 재발견해내고자 하는, 소박하지만 유의미한 국제무용축제로서 자리잡고 있다. 아시아권 춤문화 교류, 이 중 특히 부토의 국내 소개에 크게 기여하였고, 여러 나라의 민족춤을 학구적 태도로 다루어왔으며, 국내 신진 안무가들의 발굴에도 관심을 유지하였다는 것 등이 이 유의미함의 면면이 아닐까 싶다. 안타깝게도 창무 포스트 극장의 지리적 한계와 극장내부의 청결상태 불량 등등의 이유로 좀처럼 발이 가질 않아서인지, 이 축제는 그다지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그러나 올해는 뭔가 재미있는 기획이 준비되어 있는 것 같다. ‘왕의 춤을 위한 주제와 변주’라는 기획으로 프랑스 바로크 변주, 중국 궁중무 변주, 하와이 훌라 변주, 한국 궁중무 변주 춤들이 선보이게 된다. 루이 14세의 춤인생을 그려낸 ‘왕의 춤’이라는 영화를 떠올려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왕들이 춤이라는 매체를 얼마나 궁극적인 권위의 표현 수단으로 여겨왔었는지를 익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궁중, 궁정의 춤들은 매우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이며 정련된 춤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속에 왕의 권위와 국가의 안녕이 심오하고도 논리적으로 담겨 있었다. 이러한 왕의 춤을 현대의 안무가들이 변주해낸다는 것은, 민족성에 대한 탐구이자 춤의 궁극을 왕처럼 즐기고자 하는 도전이 될 수 있다.


탁월한 음악적 해석으로 주목받아온 안성수는 역시 이번에도 프랑스 바로크를 음표 하나하나 뜯어볼 모양이다. 토카타의 긴장감, 첼로 캐논의 당돌함, 그리고 클라리넷 캐논의 고요한 견제가 어느 특별한 날의 <전야>를 연상하게끔 해줄 것이다. 이 깔끔한 추상이 바로크를 어떻게 여행하는지를 기대해볼 만 하다.


프랑스 안무가 수잔 버지의 <달 그림자 속의 테라스>라는 작품은 바로크 주제를 동양적 움직임 변주로 그려낸 작품이며, 이번 공연에서는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무용가 남영호가 출연한다. 수잔 버지는 세계 각국을 다니며 민족춤을 안무 모티브로 삼아왔고, 전통과 현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안무가이며, 이번 축제에서 안무 워크샵도 진행하게 된다.(5월 말부터 시작)


중국 궁중무 변주에서는 한국의 안무가 정명지와 중국 안무가 증환흥의 작품이 선보인다. 정명지의 작품 <미롱>은 중국 궁중무용에서 춤을 추는 무희들이 춤의 경지에서 띠는 미소를 일컫는 단어이며, 이 미롱의 형태가 춤으로 이미지화된다. 증환흥은 현재 중국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무용 콩쿠르에서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재능있는 안무가이다. 증환흥의 <행자>와 <당인의 노래>는 중국의 왕과 황제들에 대한 찬미로서, 진정 궁중무 본래의 ‘왕에 대한 칭송’이라는 성격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리라 기대해볼 만 하다.


열대과일음료 광고에서나 보던 관광 쇼 훌라의 이미지를 재고할 기회는 마이클 팽의 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훌라는 본디 하와이의 제의 춤으로서, 통치자들이 종교의식에서 관리해왔던 춤이었으나, 19세기 미국 선교사들이 하와이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하고부터는 그 제의성은 약해지고 오락성이 강화되었다. 20세기 후반에서야 이 훌라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시작되었는데, 마이클 팽은 유능한 쿠무 훌라(‘쿠무’는 교사라는 뜻이다)로서 이 흐름에 동참함과 동시에, 전통 훌라를 무대화시키는 데에도 기여한 춤꾼이다. 신성한 훌라의 기를 받아볼 만 하겠다. 또한 한국 안무가 조성희는 훌라의 화려한 꽃무늬 이미지를 <파라다이스여 안녕>에서 변주해보인다.


우리 궁중 정재를 생각하면 지루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 궁중무 변주인 윤수미의 <무인구>와 이경은의 <조용한 사람>을 권하고 싶다. 궁중 정재를 착실히 뜯어보고 뒤집어 보고 매만져 본 이들의 작업은, 현대에 궁중무가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종묘공원을 산책하면서 고대의 죽은 왕들의 공간과 걷고 있는 내 발걸음을 공감각적으로 느껴본 적이 있다면, 윤수미의 <무인구>를 보며 다시 한 번 생과 사, 그 찰나를 맛볼 수 있겠다. 이경은은 궁중정재 <춘앵전>에 담겨있는 강한 에너지와 절제, 그리고 여유로움과 당당함을 현대적으로 풀어본다. 화문석에서 절제된 춤을 추는 조선시대 궁중 춤꾼의 화전태 미롱을 상상하면서, 이경은의 자유롭고 역동적인 상반된 이미지를 겹쳐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자, 잔칫상 메뉴는 이 정도로 소개하였으니, 세상의 왕들이여, 그럼 이제 잔치를 즐겨 보시게나.




글_ 김만지  ds@dancingspider.co.kr
사진제공_ 창무국제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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