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평의 빈곤이 낳은 남세스런 변명

춤추는거미 | 2005.01.17 11:09 | 조회 4230
비평의 빈곤이 낳은 남세스런 변명



2004 올해의 예술상 무용 부문에서 벌어진 소동은 현재 국내 춤평론이 가진 총체적인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현상이었다. 어느 무용가의 수상 거부가 낳은 파문은 졸속으로 제정된 상이 어떻게 비평 문화 그 자체를 집어삼키는 리바이어던으로 둔갑하는지를 극적으로 연출하였다. 무엇보다 수상 거부에 대한 평론가들의 감정적 반발은 그들이 과연 평론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지 그 자질을 의심케 하였다. 교만과 독선의 언사로 무용가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는 춤계를 둘러싼 현실이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춤은 무용가의 것이며, 무대 역시 무용가의 것이다. 평론은 무용가가 가진 예술가의 자존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수상 거부는 그러한 자존심의 상처를 드러낸 것인 바 마땅히 존중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거품처럼 제정된 신생의 일개 상이 무방비로 춤계를 휘저어놓은 천박한 세태 속에서 진지한 평론은 없고 단지 수상 과정의 허황한 휘몰이로 비평문화의 공백을 벌충하려는 것은 무척 남세스런 일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홍승엽의 수상 거부 발표가 있은 다음에 올해의 예술상 무용 부문 선정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입장 표명 속에 담긴 내용이었다. 홍승엽은 심사 기준의 문제와 심사방법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상을 심사하는 합리적인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고, 또한 비디오자료를 통한 심사 방법이 타당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선정위원회측은 명확한 심사 기준을 밝히지 않으면서 단지 홍승엽이 심사 기준을 왜곡하였고, 그러한 문제제기는 예술인으로서의 품격을 잃은 처사라고 비난하였다. 하지만 항상 비평이나 심사에는 시각의 문제가 따르게 마련이며, 어떤 인적 구성을 하였는가에 따라 수상의 결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실제로 이번에 최고상을 수상한 김윤규의 <솟나기>는 민족주의 계열의 시각으로 볼 때는 수작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는 그동안 남루했던 패턴이 세련화되고 알레고리의 수법을 가미한 수준작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이러한 비평적인 문제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시각의 주관주의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품격을 잃은 처사라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나아가 심사 방법의 문제는 심각할 정도인데, 선정위원회는 비디오 자료를 통한 심사가 어떤 위험한 곡예인지 전혀 실감하지 못한 듯하다. 즉 통상적으로 춤 공연은 비디오 자료로 남겨지며, 춤을 보존하는 차선책으로 춤계의 관행으로 널리 선용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춤을 기록하는 수단과 춤을 평가하는 방법은 엄연히 다르다. 춤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비디오 자료만을 보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사실은 무용인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것이다. 춤은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이며, 당연히 평론가는 그 현장에 함께 해야 한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명제이다. 실제로 마당극이 이상적인 현장예술, 무대예술일 수 있는 것은 그 드높은 현장성 때문이 아닌가. 또한 연극도 공연을 보지 않은 구성원을 포함한 채 비디오 자료를 통해 심사한 예가 있는가. 나아가 영화 역시 극장에서 보지 않고 비디오를 통해 그 우열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도무지 가능할 법하지 않은 심사 방법을 강변하는 것은 놀랍기 그지 없다. 실제로 선정위원회는 상당수 심사위원이 공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비디오 자료만을 가지고 평가했다고 실토하면서도 오류를 야기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남세스런 변명을 하고 있다. 평론가는 비디오 자료만을 보고도 전문 식견이 있기 때문에 춤 원본을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것은 얼토당토 않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만일 선정위원회 주장대로라면, 비디오 자료만 보고도 평론을 비롯한 글쓰기를 할 수 있고 춤에 관한 정론을 펼칠 수도 있단 말인가. 군색한 자기 변명이 족쇄가 될 뿐만 아니라 이것이야말로 무용인으로서 품격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홍승엽의 수상 거부 이후 벌어진 일련의 흐름 속에서 평론가들이 보인 감정적 반발과 ‘홍승엽 죽이기’식의 우격다짐이다. 우수상을 이미 수여한 바 있으면서도 뒤늦게 괘씸죄를 적용하여 이상한 방식의 폄하를 시도하는 것에서 비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선정위원회는 홍승엽의 <싸이프리카>가 자기화된 양식으로서의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의 참신성 결여, 안무 패턴의 고착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제기되었고, 최우수작인 <솟나기>에 비해 감각주의에 치우쳐 특히 심오함과 진지함이 떨어진다는 것이 중론이었다고 밝혔다. 그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선정위원회 수상 발표에 왜 나오지 않았는가. 수상 거부 파문 이후에야 뒤늦게 작품성을 폄하하는 방향으로 제시된 것은 그 저의가 의심된다. 또한 이러한 단정적인 표현은 일찌감치 어떤 진지한 평론들의 제시가 있어서 그 객관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과연 <싸이프리카> <솟나기> 등등에 대해 선정위원회의 심사위원들은 진지하게 평론 작업을 해온 바 있는가. 상을 위한 짧은 평문 속에서 이처럼 비평의 빈곤이 두드러지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다. 그것에 둔감한 현상 역시 가련하다.


또한 어느 평론가는 선정위원회 명의의 발표에 만족하지 않고 양대 춤잡지에 감정적인 ‘홍승엽 죽이기’에 나서서 주목을 끌었다. 이 글들은 하나같이 대세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솟나기> 상찬에 나섰고, 자신이 진보적인 흐름에 편승했음을 알리고 있다. 기회주의의 전선이란 이처럼 돌출적이다. 또한 그는 홍승엽이 안애순과 더불어 국내 최고의 안무가라고 하면서 동시에 <싸이프리카>를 익명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누구인지 밝히지 않으면서 혹자는 그 작품이 ‘산업사회의 쓰레기’라고 했다고 하며, 그것은 지난 11월 공연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홍승엽이 수상 거부만 하지 않았어도 여전히 우수한 안무가의 좋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그 파문이 생기자 비평적 판단은 달라지고 만 형국이다. 사태의 흐름에 따라 우수상을 수여할 정도의 작품이 졸지에 쓰레기로 전락하는 이 현상 앞에서 평론은 없다.


홍승엽의 수상 거부를 기득권 세력의 괜한 고집으로 폄하할 수 있을 만큼 홍승엽은 기득권을 누렸는가. 그것은 사실의 왜곡인 것 같다. 기득권을 누리는 것은 평론가일 뿐이다. 그리고 새로운 국면 전환에 따라 새롭게 변신하는 것도 평론가이다. 자기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




글/ 앨리스와 탱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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