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발레, 영화 속의 무용수(3)

춤추는거미 | 2005.01.05 23:22 | 조회 7768

영화 속의 발레, 영화 속의 무용수(3)


      



(지난호에 이어서)

실제 발레단의 무대를 볼 수 있는 영화는 또 있다. 전설적인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의 일대기를 그린 <안나 파블로바 Anna Pavlova>. 구소련과 동독, 프랑스, 쿠바, 영국의 합작품으로, 어릴적 보았던 동화책 ‘꿈꾸는 발레리나’의 이야기 그대로를 영화로 옮긴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영화다. 정말 옛 발레리나같은 통통한 배우 갈리나 벨랴예뱌가 파블로바 역을 맡아 열연하였는데, <잠자는 숲속의 미녀>부터 <지젤>, <백조의 호수>, <빈사의 백조>를 비롯, 각종 파블로바 안무작을 춤추는 모습을 보면 그 역시 발레 훈련을 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페름 학교에서 안무를 공부하고 여러 러시아 영화에서 춤을 추었던 댄서 전용 배우다.
캐릭터는 고증했을지언정 발레 무대와 의상은 신경을 덜 썼는지, 영화에 등장하는 무대나 의상은 1980년대 당시의 키로프 발레단(파블로바가 있던 마린스키 황실 발레의 후신) 무대 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빈사의 백조>의 의상은 예전 파블로바가 입었던 모습을 복원했다.




클래식 발레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대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온 영화도 있다. 바로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Les Uns et les Autres>와 얼마 전 개봉한 화제작 <빌리 엘리어트 Billy Eliot>이다. <볼레로>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유럽인들을 몇 대에 걸쳐 그린 장황한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면 그 장황한 이야기보다 더 머리에 남는 건 마지막 장면이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전쟁-전후 세대들이 모여 야외 밤공연을 하는 장면이자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다.
오케스트라가 라벨의 ‘볼레로’를 연주하면 두 가수가 목소리로 멜로디를 노래하고, 빨간 원형 무대 한가운데 선 조르주 동은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 Bolero>를 춤춘다. 예전에 개그맨 황기순이 어느 프로에서 패로디하기도 했던 이 장면은 까만 타이즈를 입고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작은 스텝으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너무나 폭발적이고 충격적이다. 20년 지난 지금도 그 작품은 많은 <볼레로> 버전들 중 명작으로 꼽히며, 베자르의 애인이었던 조르주 동 역시 야성적인 카리스마로 유명세를 불태웠다. 모리스 베자르의 발레단(당시는 ‘20세기 발레단’이었고 현재는 ‘베자르 로잔느 발레단’임)은 2001년 내한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삶을 위한 발레 Ballet for Life>를 공연하였다. 이 공연에서도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이제는 저 세상 사람인 조르주 동의 정열적이고 힘찬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한 소년이 춤추고픈 욕망을 거부하지 못하고 결국 최고의 발레 댄서가 되어 세상 발레리나들의 꿈인 ‘백조’까지 연기하게 된다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 이 영화에서도 역시 가장 뇌리에 박히는 장면은 아마 마지막일 게다. 성장한 빌리가 백조 모습의 일명 ‘총채 바지’를 입고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 그 발끝과 섹시한 아킬레스건과 아름다운 등! 그리고 힘으로 똘똘뭉친 팔. 춤추는 사람이건 춤과 상관 없는 사람이건 이 도약 장면에서 “헉!” 소리 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춤추는 사람 중에서도 정말 보기드문 몸이니까. 그 유명한 장면은 바로 작년 내한했던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여자 백조 대신 남자 백조가 등장하는 <백조의 호수> 영국 왕실 버전이다. 그리고 그 섹시미 가득한 무용수는 아담 쿠퍼로, <백조의 호수>로 대스타가 되어 얼마 전에는 자기 작품 <당신의 발끝으로 On Your Toes>를 안무하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춤에 입문했다는 남학생도 있고, 남자무용수들이 아담 쿠퍼의 몸을 보고 더욱 몸매 가꾸기에 시간을 할애한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다.


아직 발레 공연을 직접 찾아가기는 두렵고 조금이나마 발레 무대의 화려함을 만끽해보고 싶다면 이렇게 영화 한편을 빌려보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그 무대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물론 작품 전체를 볼 수도 없을뿐더러 편집된 장면들로는 그 무용수의 진가를 알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맛보기, 눈요기로 단련되었다면 조금은 드레시한 옷으로 멋을 내고 극장을 몸소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극장에서 몸과 몸으로 직접 마주하는 발레 작품, 무용수들과의 황홀한 교감은 육질 좋은 고기보다 더 오랜 즐거움을 지속시켜주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버디친구다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 이희나 petiteh@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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