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했던 정재 연출 방식

춤추는거미 | 2004.11.28 01:34 | 조회 5239
다양했던 정재 연출 방식

과거의 모습을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 환치해서 바라보는 태도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사극에서 시청률을 고려하여 허구적으로 그려낸 인물 이미지를 실제 인물과 동일시하는 경우도 같은 맥락이다. 또 비록 문헌에 나타난 기록이라 하더라도, 단편적인 기록에 나타난 과거의 모습은 실제와 간극이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문헌조차도 충실히 파악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그려내는 과거의 모습은 매우 고정적이며, 단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재가 재현되는 모습으로만 과거의 정재를 판단할 때에도 이러한 오류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가 익숙히 볼 수 있는 정재는 재현된 정재이기 때문에, 재현된 모습이 과거에 연행되었던 정재 모습의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당시 정재는 당대인의 삶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그렇게 살아 있는 대상은 융통성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순조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했던 시기의 연향을 기록한 《무자진작의궤》(1828, 순조 28)와《기축진찬의궤》(1829, 순조 29)에서, 2년이라는 짧은 시기동안 정재가 다양하게 연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연향의 종류에 따라 같은 정재라도 춤추는 인원수가 다르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원 구성의 다양성은 춤구성의 변화까지도 이끌어 내었는데, 몇 가지 정재의 예를 들어 그 모습을 엿보자.

가인전목단과 아박무의 다양한 춤구성

'아름다운 사람이 모란을 꺽는다'는 가인전목단 정재는 1828년(순조 28) 6월 1일 연경당 진작에서 최초로 연행되었다. 춤꾼들이 모란을 한 가지씩 취하는 것이 주요 움직임이며, 4명·18명·14명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4명으로 구성되었을 때, 2명씩 2대로 나뉘어 대형을 이루었다면, 18명이나 14명으로 구성되었을 경우에는 모란화준을 빙둘러서는 대형을 취한다. 아박과 함께 가인전목단 자체의 집박여기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동그라미를 친 부분이 집박여기이다. 박을 쳐서 박자를 짚어주는 역할을 한 듯하며, 여령女伶이 연행한 경우에만 나타난다.






최화무의 죽간자 유무

최화무 정재에 나타난 죽간자의 있고 없음도 중요하게 생각해볼 문제이다. 죽간자의 유무는 죽간자가 부르는 구호와 치어까지도 포괄하기 때문에, 단순히 무구의 있음과 없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존에 전승되어온 당악장재 수연장과 포구락에서 죽간자의 존재도 1828년의 연향에서 사라졌다가, 이듬해인 1829년 다시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효명세자 대청기의 창작 정재인 최화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꽃 피기를 재촉하는 춤'인 최화무는 1828년 6월의 연경당 진작에서 최초로 연행되었는데, 이 때는 죽간자가 없었다가 이듬해인 1829년 6월의 자경전 진작에서는 죽간자가 등장한다. 따라서 죽간자를 기준으로 당악정재와 향악정재를 가늠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효명세자 대리청정 시기의 정재 연행양상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다양함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옛 것과 새 것이 함께 존재하며, 옛 것을 밑바탕으로 하여 새 것을 만들기도 했다. 동일한 정재라도 어느 때는 창사가 불려지고, 어느 때는 생략되어 연행시간에 탄력성을 부여했다. 또한 전승되어온 정재이든 새로 창작된 정재이든, 동일한 정재라도 연향에 따라 무원수가 다르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정재 춤사위 대형의 변화로 이어져, 연행공간에 탄력성을 부여했다. 반주음악도 동일한 정재에 다른 악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정재 연행에 나타난 ‘다양함의 공존’은 당대의 문화적 성숙도를 보여준다. 서로 다름을 폭넓게 끌어들여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 생각한다.

조경아. 순조대 효명세자 대청시 정재의 연행양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학위논문, 200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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