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솔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 (1)

춤추는거미 | 2005.08.31 02:46 | 조회 5419

"캐릭터 솔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1)

* 주) 여기서는 발레에서의 솔리스트만을 이야기한다


고전 발레에서 캐릭터 솔리스트는 마치 햄버거의 치즈와 같은 존재다. 햄버거의 필수적인 존재인 햄버거 빵과 고기 패티가 주역무용수에 비유될 수 있다면, 치즈는 햄버거를 더욱 맛깔스럽게 하면서 내용물에서 빠지면 허전하다. 즉, 캐릭터 솔리스트는 주역만큼 작품 전체를 지배할 만큼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심리적으로는 그보다 더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역할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필자와 같은) 일부 햄버거 팬들이 맛있는 치즈가 녹아있는 패티에 흥분하는 것처럼, 일부 개성 있는 캐릭터 솔리스트의 역할에 흥분하는 발레 팬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캐릭터 솔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

몇몇 고전 발레 공연을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고전 발레 작품에는 주역 두 세 명과 군무진만 등장하지 않는다. 주역과 비슷하게 커플로 등장해서 파 드 되(2인무)를 추는 경우도 있고, 서 너 명이 한꺼번에 등장해서 춤추다가도 그들이 번갈아가며 한 명씩 솔로를 추는 경우도 많다. 가령, <지젤> 1막에서의 ‘패전트 파 드 되’의 배역이 그러하며 <백조의 호수> 3막의 각 나라 공주의 춤, <호두까기 인형> 2막의 각 나라 요정들, <잠자는 숲속의 미녀> 3막 결혼식 장면에 등장하는 배역들이 대표적이다.
또, 뛰어난 기량이나 재치 있는 연기로 대표되는 캐릭터 솔리스트가 있는데, <백조의 호수>에서 점프와 턴을 연속해서 보여주는 광대나 <고집쟁이 딸>에서 딸에게 구애하며 쫓아다니는 코믹한 캐릭터의 정수 알랭 역할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솔리스트의 춤들은 고전발레 작품에서 좀 더 의미 있게 읽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고전발레 작품은 주인공 남녀를 중심으로 단순하고 동화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고 있다. 또한 이 주인공 남녀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공주이거나 요정이며, 멋진 왕자이거나 모험가이다. 이들은 경탄의 대상, 즉 스타이다. 주역 무용수와 군무진 만이 존재한다면, 스타 연예인의 버라이어티 쇼와 다를 것도 없어 보이리라.


자칫 일률적이고 유아적인 작품들로 그칠 수 있는 이런 고전 발레 작품들을 다양한 캐릭터들로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 이 솔리스트들의 역할인 것이다. 사실상 동화 같은 고전발레 작품 속에서 그나마 생생한 일상의 인간군상을 색다른 미감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남녀 주인공의 판에 박힌 성역할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개성들을 표현하면서 뛰어난 테크닉까지 과시하는 솔리스트들이 없다면, 고전 발레 작품들은 치즈 빠진 햄버거 정도가 아니라 앙꼬 빠진 찐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동안 많은 매체의 관심은 ‘주역’에 집중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춤추는거미>는 이렇도록, 솔리스트의 위치를 마련해보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솔리스트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국립발레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세 명의 솔리스트 무용수들을 만났다.


청일점 김준범씨. 그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항상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는 광대 재스퍼 역 전문 무용수다. 재스퍼는 1막 장엄한 왕궁 장면에서 유일하게 높은 점프와 연속적인 빠른 턴을 하며 왕궁 인물들과 관객들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띄워주는 중요한 역할이다. 또한 올 10월에도 공연할 <고집쟁이 딸>에서는 알랭이라는 바보 귀족 역을 맡아 코믹한 발레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 한명은 스페인 춤 전문 무용수인 전효정씨. <호두까기 인형>이나 <돈키호테> 등에서 정열적인 스페인 춤 장면은 모두 그의 몫이다. 그만큼 춤에서 순발력과 남국의 열정이 묻어 나온다는 이야기. 또한 <호두까기 인형> 같은 경우 주인공 마리 역할을 맡기도 해서 주역-솔리스트라는 이중생활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정혜란씨. 셋 중에 가장 나이어린 그는 군무와 솔리스트의 언저리에 걸쳐있다. <백조의 호수> 군무 씬에도 등장하면서 폴란드 공주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몸 라인이 워낙 아름다워 주변 무용수들에게 라인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보통 솔리스트는 주역처럼 전 막에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군무진처럼 계속해서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아요. 대신 100미터 선수처럼, 어느 한 순간 나타나서 2-3분 ‘파바박’ 춤추고 퇴장하죠. 사실 그게 더 긴장되고 힘들어요.” 주역과 솔리스트 역을 모두 해 본 전효정씨의 경험담이다. 그런데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맞아요, 무대 뒤에서 보면 솔리스트들은 몸 푸느라 달리기 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보통 주역은 처음 등장할 때는 잔잔하게 춤을 추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몸이 풀리면 고난도의 솔로를 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솔리스트는 그런 단계가 생략된 채 바로 점프를 거나 턴을 돌아야 하죠. 그게 엄청 큰 스트레스랍니다.” 김준범씨의 대답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두까기 인형> 2막은 각 요정들의 짧은 춤에서 나오는 강한 임팩트가 작품의 묘미이고, 그것이 솔리스트들의 순간적인 에너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의 화려함 이면에는 역시나 훨씬 길고 고된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화려한 왕자, 공주의 로맨스에 집중하고 그들의 솔로 한번에 터질 것 같은 박수로 응답하는 관객들, 그들이 솔리스트들의 이런 힘듦과 고뇌를 알는지.


다양한 성격의 춤을 구상하고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그들과의 화기애애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더 생생하게 밝혀드리도록 하겠다.





글+사진 / 우유식빵 + 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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