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솔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2)

춤추는거미 | 2005.10.18 14:51 | 조회 4660

"캐릭터 솔리스트"*, 그들은 누구인가(2)

* 주) 여기서는 발레에서의 솔리스트만을 이야기한다


얼마 전, [춤추는거미]에서는 고전 발레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 솔리스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했었다. 또한 국립발레단의 세 솔리스트(김준범, 전효정, 정혜란씨)와 대화를 나누며 실제 우리나라 발레단의 솔리스트가 겪는 고민과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번 편에서는 그들과 나누었던 짧지 않은 대화 속에서 건져낸 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려고 한다.





솔리스트의 목표와 보람이란


TV 드라마든 영화든 오페라든 오케스트라든 주역’이라는 것, 중심에 선다는 것은 스포트라이트와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는 말과 동급이다. 작품 전체를 이끌고 나간다는 자체만으로도 주역은 테크닉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흔히 생각되기 쉽다. 즉 관객들은 ‘이미’ 그들에게 가장 많은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대부분 솔리스트들의 최종 목표는 주역무용수란다. “주역을 맡고 싶죠. 아마 모든 무용수의 꿈은 주역이 아닐까요? 어느 누구도 스포트라이트와 최고의 관심을 받고 싶은 욕망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정혜란씨가 대답했다. 그러자 주역과 솔리스트 모두 경험이 있는 전효정씨가 덧붙였다. “예전에 전 주역을 맡으면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정말 주역을 해 보니까 좋았어요. 그런데 사실 솔리스트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부담이 커요. 주역은 ‘주역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최소한 넘어지지만 않는다면 잘하다는 소리를 들어요. 그런데 솔리스트는 1-2분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실수 하나만 해도 그것을 만회할 기회가 없이 그냥 끝나버리는 거예요.” 약간의 섭섭한 어조가 섞인 대답이다.


하지만 <춤추는거미>는 ‘솔리스트로서’, 특히 뛰어난 테크닉으로 특정 배역의 장기를 가진 ‘캐릭터 솔리스트’라면 그 위치만으로도 일종의 자부심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직도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UBC의 <호두까기 인형>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현재 UBC 단장인 문훈숙씨는 작품의 주역인 별사탕 요정으로 출연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깨고 꽃의 왈츠 솔리스트로 출연했었다. 그런데 관객의 호응과 박수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오랜 시간동안 춤췄던 별사탕 요정이 아니라 꽃의 왈츠였다.
그때부터 반드시 주역이 최고의 춤을 추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리라는 생각은 사라졌다. 분명 주역보다 빛을 발하는 솔리스트가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짧은 찰나의 순간에 불타기에 더욱 화려하고 장렬하며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는 것이다.


“네, 그럴 때가 있어요. 정말 최선을 다해 춤을 추고, 관객들이 그것을 알아 줄 때요. 나를 지켜보고 내게 박수를 보내준다는 건 정말 행복하죠.” 요즘에는 발레 팬들이 많아지면서 특정 솔리스트의 고정팬들도 생겼단다. 김준범씨의 경우, 그런 골수팬 몇몇은 일부러 김준범씨의 공연만 골라서 본다고.



컨템포러리 발레와 우리 발레의 모습


그런데 요즘 세계적인 추세는 고전발레만 가지고는 절대로 상위에 설 수 없다.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국립발레단이나 UBC도 일년에 한번 이상은 컨템포러리 소품들을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보통 캐릭터 솔리스트니, 솔리스트니 하는 것은 배역이 정해져 있고 피라미드 구도가 확실히 잡혀있는 고전 발레 류의 작품에서나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렇지 않은 수평적 구도의 컨템포러리 발레에서 그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만들어낼까.


“얼마 전 장-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도베 라 루나>라는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 때는 뭐 모두가 같은 급에서 같은 동작을 춤추는 거니까 특별히 주역 조역과 같은 구분은 없죠. 물론 솔리스트의 역할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요. 더 비중 있게 춤추는 사람이 간혹 있을 수는 있겠지만요.” 전효정씨는 이처럼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인다. “그런데 사실 저희가 그 춤을 추면서 자기만의 해석, 이런 것까지 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사실 그러한 춤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동작 외우기에 거의 정신이 없었거든요.”
다른 무용수들도 그와 비슷하게 대답했다. “몸을 풀 때도 거의 클래식 위주로 하고 고전 발레 레퍼토리 위주로 운영되니까 컨템포러리가 낯선 것은 사실이에요. 몸을 쓰는 방법이 다른데 그렇게 며칠 하다보면 <백조의 호수>나 <지젤>을 추기가 힘들어지거든요. 그러한 방식으로 몸이 굳어버려서요. 동작을 해석하고 나만의 색깔을 부여하는 것은 테크닉을 마스터 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인데 고전 발레를 계속 하면서 컨템포러리까지 그렇게 하기는 힘들죠.”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 발레계의 문제점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했다.





왕자와 공주 일색의 모습이 아닌 자신들의 가능성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말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 당당했다. 앞으로 목표를 이루어 주역으로 무대에 서든, 솔리스트로서 한순간의 매력을 뿜어내든, 무대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지금의 모습 그대로일 것만은 분명하다.






글+사진_ 우유식빵+김만지
사진제공_ 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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