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계 ‘별’들의 타계

춤추는거미 | 2007.09.05 16:11 | 조회 4764

무용계 ‘별’들의 타계

  

지난 달 심소 김천흥(98) 선생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고 나서 무용계는 또 다시 슬픔에 빠졌다. 지난 6월과 7월, 송범(본명 송철교, 82) 선생과 초개 김영태(71) 선생의 서거에 이어, 근 세 달 사이로 근현대한국무용사의 ‘산 역사와 증인’으로 추앙되던 세 개의 큰 ‘별’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은, 문화예술계의 도탄지고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춤추는 거미’에서는 이 세 ‘스타’의 생애를 시간적 흐름에 따라, 회자되는 이야기들을 주로 하여 무용사적 관점에서 회고해보고자 한다.





조선왕조 마지막 무동, 김천흥  



1909년 2월 9일 서울시 남대문 양동(이북골)에서 태어난 김천흥 선생은 13세 때인 192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생양성소’(현재의 ‘국립국악원’이 후신임)에 2기생으로 입소해 궁중무와 궁중아악에 첫 발을 딛는다. 그 이듬해 봄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 황제 오순(五旬) 탄신 경축 진언 때 이왕직아악부의 무동으로 출연하면서 ‘조선왕조 마지막 무동’이란 별호를 얻는다.



아악부원 활동 중 1941년 ‘한국 근대춤의 아버지’인 한성준에게 <승무>를 배웠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조선예술협회’의 조선악부 일원으로, ‘한국가면극연구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 ‘대한국악원’에서 춤을 가르치고, 서울 환도 후 본격적으로 궁중무, 궁중무를 변형한 춤, 창작춤 등을 발표하며 전통 춤의 무대화 작업에 힘썼다. 궁중무에 정통하면서도, ‘민속무의 대가’로 불릴 정도로 민속춤에 애착이 대단했다. 1951년에는 국립국악원 국악사로 입문해 후학을 양성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공표되면서부터는 15년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며 무형문화제 조사보고서를 작성해 전통춤 연구에 중요한 기록들을 남겨놓았다. 20세기 한국현대춤사의 중요한 예술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 ‘정재 재현 작업’도 ‘김천흥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다’고 평가 받았다. 1968년에는 중요무형문화제 제 1호 ‘종묘제례악’(해금, 일무) 보유자로, 1971년에는 제 39호 ‘처용무’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한국무용계의 금자탑, 송범


송범 선생은 1925년 12월 17일(실제 출생일, 호적 기재사항은 1926년 3월 25일) 충북 청주시 영운동에서 태어났다. 양정중 2학년 때 최승희의 신무용을 보고 춤에 매료되어 ‘한국 근현대무용의 선구자’인 조택원 선생과 장추화 선생을 사사한다. 인간문화재 한영숙씨에게도 한국 춤을 배워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등 다양한 무용을 섭렵했다.



한국전쟁 직후 한국무용단을 창립해 부산 등에서 활동했다. 1961년부터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직, 국립무용단 창립 멤버로 활동했다. 국립무용단에 30년을 재직하며 서양 클래식 발레에 대응하는, 이야기가 있는 드라마틱한 ‘무용극’을 정립시켰다. 멕시코올림픽(1968년), 뮌헨올림픽(1972),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공연(1976), 유럽 순회공연(1980), LA올림픽(1984년)등의 국제적 행사에 참여해 문화사절로 활동하며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도미부인’, ‘별의 전설’, ‘왕자호동’, ‘시집가는 날’, ‘심청’ 등 한국적 소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100여편의 안무 작품을 남겼으며, 그 중에서도 <도미부인>(LA올림픽 문화예술축전 초연)은 수작으로 꼽힌다.


춤을 사랑한 시인, 김영태
1936년 11월 22일 서울 출생인 초개 김영태 선생은, 홍익대 서양화가를 졸업하고, 1959년 사상계를 통해 ‘시련의 사과나부’로 시인으로 데뷔했다. <매혹>, <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 <남 몰래 흐르는 눈물> 등 17권의 시집을 내며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했다.


무용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70년부터이다. 그의 ‘고정석’인 ‘대학로 문예회관 가열 123번(현 아르코대극장 가L열 11번) 자리가 채워지지 않으면 막이 오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공연은 빠지지 않고 보았다. 이후 ‘춤’, ‘공간’, ‘객석’  등에 그만의 개성 짙은 수필 형식의 무용평론을 썼다. 칼퇴근 후 공연장으로 달려가 공연을 보는 그의 춤에 대한 사랑 때문에 24년 동안 다닌 은행에서도 명예퇴직한 이야기 역시 ‘고정석’ 만큼이나 유명한 일화이다.


아내와 두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30년 이상을 ‘기러기 아빠’로 지내면서 여성 무용수와의 스캔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무용에 대한 사랑을 꺽을 수 없었다. 아직도 서점 내 ‘무용 서적’ 칸은 그에게 할당된 1할의 공간으로 <갈색 몸매들>, <막간> 등 13권의 무용 평론집과 사진집이 자리하고 있다. 고인은 암투병 중에도 ‘객석’ 7월호에  무용칼럼을 쓰는 등 마지막까지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남은 작업들
춤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을 춤에 받친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무엇보다도, 역사 속 인물이 된 이들의 업적을 다시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글_진선미 ds@dancingspider.co.kr
사진_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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