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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 거미 | 2013.01.07 12:09 | 조회 6081

    움직임, 또 하나의 소통 방식- 기젤라 회네Gisela Höhne,

    토미 파소넨Tomi Paasonen 연출 및 안무, <사계Jahreszeiten>
    장소: 베를린 람바참바 극장 Theater RambaZamba Berlin -

     

     

     

     

    사회 통합적 공연예술의 대명사, 극단 '람바참바'

     

    현재 세계 공연예술계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는 베를린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테마 중 하나는 바로 '사회 통합'이다. 이는 안무가 콘스탄차 마크라스가 베를린 노이쾰른 지역의 터키계 이민자 가정 어린이들과 함께 했던 무용 작업과 유사한 내용의 프로젝트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독일인과 독일 내 이민자 가족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정체성의 차이, 혹은 젊은이와 노인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세대적 공감의 차이는 다양한 방식의 예술적 시도들을 통해 공론화되며, 관객들은 이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무대 위의 상황과 실제 현실 사이에 놓인 관계에 대해 재고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다성적인polyphonic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관심은 최근 인간의 몸에 대한 숙고와 만나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기존의 가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동안 사회 전반에 걸쳐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가 '결핍'을 이유로 완벽한 인간에 대한 부정형으로 이해되었다면, 오늘날의 공연예술계는 '결핍'이라는 상태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일방향적 틀을 넘어서서 그 상태 자체를 하나의 예술적 동기로 삼아 그로부터 창조적인 활동을 생산해내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예술작품, 즉 결과로서의 예술이 아닌 과정적 예술, 활동으로서의 예술이 각광받고 있는 서양의 포스트모던 이후의 예술 경향과 공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핍된 완성품'으로 인식되어온 장애우들의 몸을 '생산적인 상태'로 사고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공연예술계가 직면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패러다임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극단이 있으니, 바로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극단 '람바참바'다. 극단의 대표이자 상임연출가이기도 한 연극학자 기젤라 회네 박사는 1990년에 정신 장애가 있는 장애우들을 위한 극단 람바참바를 설립하고 그 다음 해에 실제 장애가 있는 극단 단원들과 본격적으로 연극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극단을 설립하게 된 배경에는 회네의 맏아들인 모리츠 회네가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는데, 아들을 출산할 당시 전문 연극배우로 왕성히 활동 중이던 그녀는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 배우 생활을 접고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예술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때 회네가 작품 창작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동정을 구하지 않는 작품, 그리고 장애 배우들에게 치료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공연예술을 장애우들의 치료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 서는 순간 뿜어져 나오는 배우들의 에너지를 통해 장애를 가진 배우들과 무대 위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 사이의 소통을 시도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극단 '람바참바'의 작업은 관객들의 동정이 아닌 관객들과의 공감을 지향하게 되었고, 실제 모리츠 회네는 현재까지 극단의 배우이자 음악가로 활동하며 다른 동료 장애우 배우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공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결핍, 가장 강력한 표현의 근원 - 극단 람바참바의 신작 <사계>

     

    2012년 11월 초에 처음 선보인 작품 <사계>는 언론의 호평 속에서 12월까지 베를린 시내 중심 프렌츠라우어베르크 구에 위치한 '람바참바' 전용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은 그 동안 셰익스피어 극 등 대사가 있는 연극 작업을 위주로 해온 극단 '람바참바'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작품 전체를 현대무용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기젤라 회네는 작품의 안무적 특성을 강화시키고자 핀란드 출신의 안무가 토미 파소넨과의 협업 형식으로 신작을 연출하기도 했다. 제목 그대로 사계절을 주제화한 이번 신작에서 회네는 봄과 여름을, 파소넨은 가을과 겨울을 각각 맡아 작업했는데, 연극 연출가와 안무가의 독립적인 작업들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언어가 주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그 동안의 작업과는 전혀 달리 수화를 비롯한 배우들의 움직임이 감정 표현과 메시지 전달의 매체로 전면에 등장한 작품 <사계>에서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배우들 각자의 동작이 순수한 움직임 그 자체로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어느 날, 호숫가에서 햇볕을 쬐거나 물놀이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은 연상되는 동작을 통해 어떤 특정한 상황을 표현해낸다. 그리고 이들은 파소넨이 안무한 가을과 겨울 부분에서는 때때로 보다 추상화된 동작을 군무형식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극단 '람바참바'의 배우들이 보여주는 집단성이란 기존에 접해왔던 여느 군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배우 개인의 극적 발현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예를 들어, 다운증후군 장애우가 대다수인 배우들이 음악에 맞춰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즉흥적으로 손동작을 하며 무대 앞으로 행진할 때 관객은 이들의 손동작이 한갓 음악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음악을 표현하는 동시에 음악과 거리를 둔 채 동작 자체로도 힘을 갖는 특별한 방식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과 일상을 공유한다는 특수성은 '람바참바'의 배우들로 하여금(실제 이들은 직업 배우인 만큼 지속적으로 전문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여느 일반 극단의 배우들로서는 재현하기 힘든 그들만의 고유한 관객 소통 방식을 가능케 한다. 

     

    일상생활에서 결핍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장애 배우들의 몸, 그리고 그 몸이 발산하는 낯설지만 강렬한 에너지는 '일반 배우들과는 달리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관객들의 심리와 맞물려 작품의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봄·여름·가을·겨울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수시로 관객의 기대를 빗나가기도 하고 넘어서기도 하는 배우들의 동작을 통해 작품 <사계>에는 제 5의, 제 6의 새로운 계절들이 끊임없이 피어난다. 작품 끝 무렵,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거쳐 작품의 주제가 봄으로 회귀하자 무대 위에는 귀에 익숙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크게 울려 퍼진다. 음악이 점차 클라이맥스로 향하자 둥그렇게 모인 채 무대 바닥에 누워있던 배우들 중 한 여배우의 배가 빠르게 호흡을 반복하는 모습이 우연히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배우가 음악을 온전히 감각하는 바로 그 순간을 마주한다는 것은 관객에게 있어 곧 전율이다. 이처럼 연출된 순간의 표면을 계속해서 뚫고 나오는 배우들의 날카로운 개성을 만날 때, 관객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결핍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표현의 근원임을.    

     

     

    글 - 손옥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ds@dancingspider.co.kr
    사진 - Rob de Vr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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