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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 거미 | 2012.09.05 14:11 | 조회 6435

     

    올림픽과 안무, 그리고 대중
    [ 대중의 안무Choreographie der Massen ] 특별전
    장소: 베를린 예술협회, Akademie der Künste Berlin                                        
    일시: 2012년 6월 6일-8월 12일                                                                      

     

     

    양학선 선수의 한국 최초 올림픽 체조 금메달 소식에 열광하던 게 벌써 몇 주 전의 일이다. 영국이라는 쉽지 않은 홈그라운드에서 영국팀을 물리치고 심지어 일본까지 제친 후 당당히 동메달을 따낸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환호하던 순간도 어느새 아득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올림픽이란 무엇인가. 올림픽을 경험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흔한 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라 일컬어지는 올림픽의 핵심은 아무리 전략을 치밀하게 세운다 해도 (마치 펠레의 저주가 암시하듯이) 상황 자체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생생한 역설에 있지 않던가. 무명의 선수가 이변을 연출하며 시상대에 오르고, 세계를 호령하던 랭킹 1위의 선수가 한 순간의 범실로 인해 스포츠 역사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관객들은 분노와 환희의 양 극단을 넘나들며 자기 안의 감정들을 체험한다. 그리고 암전된 극장과는 달리, 조명으로 환한 경기장에서 감정 표현의 제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관객들은 파도타기를 통해, 혹은 힘껏 내지르는 야유나 환호를 통해 도취감을 발산한다. 물론 중계방송을 마루에서 지켜보던 지구 반 바퀴 너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관객들도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에 손에 잔뜩 땀을 쥐는 건 마찬가지다. 찰나의 순간에 관객들의 눈에 기쁨과 슬픔의 눈물이 터져 나오게 하는 이 스펙터클한 연출을 한 발짝 떨어져서 조망해보면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서사를,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격정적인 몸짓을 읽을 수 있다. 관중 개개인이 거대한 공통의 공간을 수놓는 일부분처럼 움직일 때, 우리는 이 몸짓에 대해 '안무'라 이름 붙일 수도 있지 않을까.

     

     

     

    대중이 안무하는 것과 대중을 안무하는 것

     

    관중은 즉석에서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즉, 관중의 안무는 눈앞에 펼쳐진 선수들의 스펙터클한 상황 연출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인다는 특별한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최근 이 특별한 안무 방식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하게 하는 전시회가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베를린 예술협회가 유로 2012와 런던 올림픽이 연이어 개최된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대중의 안무>라는 제목의 특별전을 개최한 것이다. 전시회는 크게 국제 스포츠 행사의 철학을 이루는 역사적 배경 설명, 경기의 스펙터클과 관객의 감정을 연출하기 위한 무대로서 기능하는 경기장의 건축학적 구조, 그리고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콘텍스트에서 나타난 군중을 담은 영상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곳곳에 설치된 올림픽 발생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볼 수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고대 올림픽은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올림피아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매 4년마다 개최되었던 고대 올림픽의 정확한 시작연도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자료의 출처가 기원전 77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그 이전으로 짐작되고 있다. 처음에는 단 하루만 거행되는 축제였지만 점차 개최되는 운동 종목이 늘어남에 따라 차후에는 5일간 계속되는 국민 축제로 거듭난다. 그리고 행사의 기원이 운동을 통한 단순한 겨루기가 아닌 죽은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종교적 제의와 관련 있었던 만큼 고대 올림픽 행사 이틀째에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이름의 기원이기도 한 신화 속 인물 펠롭스를 기리기 위한 특별의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고대 시기의 올림픽은 중앙 집중적 원형구조의 운동경기장에 집결한 시민들이 단 며칠 동안이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운동 시합이라는 스펙터클을 통해 군중 속에서의 도취감을 경험할 수 있는 일차원적인 미디어였던 셈이다.

     






    유럽의 중세시기를 거쳐 오랜 시간동안 잊혀져온 제의적 축제로서의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 문명이 활발히 재발견되던 19세기 말 쿠베르탱에 의해 복원되었고, 이후 올림픽의 부활은 근대 문명이 지향해야할 이상을 제시해주는 일종의 시대정신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근대 문화의 제창자였던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3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파시즘 체제를 옹호하기 시작했듯이, 화려하게 부활한 근대 올림픽 정신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 정점을 맞이하게 된다.

    손기정의 마라톤 금메달 덕분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베를린 올림픽은 사실 독일 나치즘 미학의 공공적 실험무대로 기능했다. 중앙 집중적인 원형경기장 구조에서 TV와 인터넷 등의 매스미디어가 지배하는 산만한 현대 사회로 넘어오는 과도기를 우리는 가령 베를린 올림픽을 주제로 한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영화 <올림피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영화의 2부에 해당하는 '미의 제전'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베를린 올림픽 주경기장을 둘러싼 채 공중으로 수직 상승하는 헤드라이트의 엄청난 광선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는데, 영상매체를 이용해 과거와 근대의 스펙터클을 매개함으로써 숭고하고도 장엄한 파시즘 미학의 정점을 시각화하는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들이 참여했던 올림픽 개막축하공연 또한 베를린 올림픽의 미학을 대변하는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대표 안무가인 마리 뷔그만과 하랄트 크로이츠베르크, 그리고 그레트 팔루카 등은 나치당국의 위임을 받아 직접 개막축하공연을 안무하거나 올림픽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다수의 인원이 출연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체조가 아닌, 표현성에 기초한 군무 형식의 작업으로 올림픽 관련 공연을 연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고대 올림픽이 축제와 제의의 현장이었다면 다시 태어난 근대의 올림픽은 축제와 제의를 미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과정이 하나 더 첨가된 이차원적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올림픽은 어떨까. 전시실 한쪽 벽에 크게 확대되어 붙어있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글에서 해답의 단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날의 대중은 사실상 한데 모여 집회를 하는 식의 대중이기를 그만뒀다. 이제 대중은 더 이상 내 발로 직접 걸어가 참여하는 방식의 집회가 아닌 매스미디어의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통치 방식 속에 살고 있다. 직접 모여드는 대중에서 프로그램과 관계하는 대중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곧 대중이 하나의 공동체적인 장소에 직접 찾아가 모이는 집회 방식에서 해방되었음을 뜻한다. 이런 식의 대중 안에서는 누구나가 개인 대중(Individuum Masse)으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 남들을 직접 보지 않고도 대중이 되는 것이다."

     

    2012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슬로터다이크가 정확히 진단했듯이 개인인 동시에 대중이 되어 전 세계로 실시간 전송되는 올림픽 생중계를 집안에서 보며 화면 속 경기 한 장면 한 장면에 울고 웃는다. TV 화면에 우연히 잡힌 영국미녀의 감격에 찬 얼굴은 볼 수 있을지언정 정작 우리 옆집 사람들이 무슨 표정을 지어가며 생중계를 보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이번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터진 두 번의 골에 대한 우리의 표정이나 동작을 스크랩해서 하나하나 이어본다면 그 자체가 우리 시대의 대중이 선사하는 하나의 거대한 안무작이 되지 않겠는가. 과거와는 달리 차원을 셈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글, 사진 - 손옥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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