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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2.05.08 00:32 | 조회 6966

    발레, 평생교육을 꿈꾸다


    - 제 4회 국제 댄스 서미트 베를린 Ⅳ. International Dance Summit Berlin


    (주관: 베를린 국립 발레단, 일시: 2012년 4월 16일-22일, 장소: 베를린 쉴러극장)




    발레라는 대명사를 넘어서

    과거, 공연장에 마치 연령을 판가름할 수 있는 CCTV라도 설치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관객의 눈과 예술 감독의 의식과 무대의 공간성이 하나가 되어 무용수의 나이를 재단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개인의 경험을 한 겹 한 겹 연대기적으로 축적해온 무용수에게 있어 자신을 표현하는 주된 미디어가 몸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여느 몸들과 마찬가지로 무용수의 몸 또한 늙기 때문이다.


    늙어간다는 것, 무대라는 공간에 자신의 늙음을 전시하고 그 곳에서 자신의 탄력 없는 몸, 늘어진 피부, 느려지는 움직임의 속도와 더불어 춤을 춘다는 것은 곧 '반드시 있어야 할 뭔가가 없는 상태'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적어도 무용수에게 있어서는 경험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결핍이나 부정의 형태로 자기 자신을 정의 내리게 만드는 하나의 잣대였다. 그러므로 무용수들에게는 나이가 들면, 그리하여 예전에 비해 움직임의 스칼라가 눈에 띄게 좁아지면, 오랜 시간 춤을 춰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더 이상 춤을 춰서는 안 된다는 자율적·타율적 규율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물론 1990년대에 이르러 공연예술계 전반에 걸쳐 몸의 대상화가 아닌 몸에 대한 주체적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단일하게 표상된 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 그리고 문화를 관통해온 복수화된 형태의 '몸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몸에 관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춤 영역의 확장을 불러왔다. 이전에는 결코 춤이라고 정의내리지 못했을 법한 주제나 동작들에 대한 미적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인식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은 지금, 피나 바우쉬의 <콘탁트호프> 시리즈나 제롬 벨의 무용수 바이오그래피 시리즈 중 하나인 <루츠 푀르스터>, 또는 알랑 플라텔의 <가르데니아>처럼 나이든 전문 무용수 혹은 비전문 퍼포머들의 몸이 전면에서 주제화되는 작품들은 어느덧 결핍과 부정을 넘어 하나의 생산적 대안으로 공연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러나 움직임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무용수의 나이와 신체 상태에 따라 동작의 퀄리티가 좌우될 수밖에 없는 장르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발레다. 하나의 발레 작품을 구성하는 규율적 동작 문법들은 특정한 동작을 무용수 자신의 몸을 통해 실현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실현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게 그 동작을 체현해낼 수 있는지의 여부로 판가름 난다.

    말하자면 발레 기본 동작인 플리에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몸과 없는 몸, 아라베스크를 이상적으로 시연할 수 있는 몸과 없는 몸 등으로 각각의 몸과 동작들이 명확한 문법적 척도에 따라 분류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발레에서 중요한 것은 무용수의 몸이 감당해낼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늙어감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늙음의 속도를 저하시킴으로써 늙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만 하는 발레리나들의 모순적 일상은 그러나 30대 후반이면 대부분 발레를 그만둔다는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결코 살아내기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을 함께 했던 발레라는 대명사로부터 벗어난 발레리나, 이제는 더 이상 무대 위에 설 수 없는 '왕년의' 발레리나를 맞아줄 곳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발레, 평생 추는 춤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전문 트레이너로 활동 영역을 바꾼 발레 마이스터들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관련 재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로 말이죠. 왜냐하면 지금까지 이런 활동 변경을 위한 직업상의 교육 과정이 제공되지 않았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발레 마이스터라 하면 대개 정기적으로 재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들 생각해요. 하지만 이 모든 건 발레 분야의 전문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들이랍니다."

    '지속적인 무용교육Fortbildung im Tanz'이라는 모토아래 개최된 이번 국제 댄스 서미트의 어젠다에 관한 질문에 무용학자 크리스티아네 테오발트Christiane Theobald 박사는 위와 같이 대답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의 기획자이자 베를린 국립발레단Staatsballett Berlin의 부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비교적 수명이 짧은 발레 무용수들의 활동이 차후에 무대 밖으로까지 어떻게 이어지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행사의 화두로 던졌다.

    그리고 약 일주일간 이어진 댄스 서미트를 통해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서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함과 동시에 발레 무용수 교육의 문제를 더 이상 앙상블 내부의 혹은 무용계 내부의 특정 사안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발레를 사랑하는 팬들과 문화 정책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들에게까지 열어 보임으로써 보다 폭 넓은 여론의 장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번 댄스 서미트를 통해 평생 교육으로서의 무용을 디자인하려했던 그녀의 시도는 다채로운 행사들로 꾸며진 전체 프로그램에 오롯이 묻어났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용은 대단하다!Tanz ist KLASSE!'라는 명칭의 특별 교육 프로그램은 베를린 국립발레단이 지난 2007년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프로그램으로 현직에 있는 단원들과 이미 퇴직한 단원들 중 전문적인 무용 교육 과정을 이수한 몇몇 무용수들이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무용을 지도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가령 국립발레단과 자매 결연을 맺은 베를린 시내의 몇몇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직접 발레단에 찾아와 무용을 배우며 전문 무용수들과 함께 어린이 발표회에 필요한 무대 의상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한다. 이처럼 일반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어린이들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문 무용수들이 함께 만든 작품은 이번 댄스 서미트 기간 중에 발레 팬들에게 선보여져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렉쳐 데몬스트레이션Lecture Demonstration과 워크샵, 그리고 안무가와의 대화 등이 관객들을 위해 무료로 진행되었는데, 특히 발레단의 전, 현직 무용수들이 진행하는 무용 워크샵은 댄스 서미트 행사 동안에만 제공되는 일종의 부대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보자, 중급자, 전문 무용수를 위한 과정으로 세분화되어 있어 직접 몸을 움직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알맞은 코스를 찾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발레 워크샵은 이번 댄스 서미트가 단지 '춤에 관한' 행사가 아닌, '춤을 추게 만드는' 행사, 다시 말해 관객들에게 움직임에 관한 동기를 부여해주는 체험 현장임을 일깨워줬다. 그 밖의 행사로는 무용과 학문의 접점을 모색하기 위해 베를린 자유대학 무용학 연구소와 공동으로 기획한 학술 발표회 '발레 유니버시티', 그리고 행사의 일환으로 초대된 보리스 아이프만 발레단Eifman Ballet St. Petersburg의 <안나 카레니나>와 <오네긴> 공연 등이 있었다.

    발레 공연을 더욱 스펙터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20대 젊은 남녀 무용수들의 발산적 에너지라면, 이번 국제 댄스 서미트를 더욱 인상 깊게 만들어 준 것은 30대 후반에서 40대 50대에 이르는 무용교육자들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 그 생의 과정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과거에는 발레가 자기표현의 미디어였다면, 지금은 누군가에게 자기표현의 방법을 나눠주기 위한 나눔과 소통의 미디어가 아닐까 싶다. 춤에 있어서의 배움이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테오발트 박사의 말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글 - 손옥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진 - Svenja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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