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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11.14 00:48 | 조회 7127

    전설이 되어버린 마지막 축제

    - 머스 커닝햄 댄스 컴퍼니, 더 레거시 투어 the legacy tour 2011
    (2011년 9월 22일-10월 3일, 장소: 베를린 민중극장 Volksbühne, 베를린 예술협회 Akademie der Künste) -




    포스트모던 댄스의 대명사, 머스 커닝햄


    지난 2009년, 안무가 머스 커닝햄은 향년 90세의 나이로 전 세계 무용팬들의 곁을 떠났다. 마사 그레이엄 무용단 솔리스트로 활약한 이후, 1953년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머스 커닝햄 무용단을 창립했던 그는 미국 포스트모던 댄스의 대부라는 수식이 말해주듯이 약 200여 편의 안무작을 통해 새로운 한 시대를 개척한 예술가였다.

    현재 베를린에서는 작곡가 존 케이지 탄생 99주년을 맞아 베를린 예술협회의 주관 하에 ‘365일 케이지 365 Tage Cage’라는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데 (참고로 이 행사는 케이지의 100번째 생일이 돌아오는 내년까지 계속된다) 이번 행사의 일환으로 케이지의 예술적 동지이자 반려자였던 커닝햄의 명작들이 9월과 10월에 걸쳐 선보였다.

    베를린 예술협회와 독일 최대 규모의 댄스 페스티벌 '탄츠 임 아우구스트'의 협력으로 진행된 이 공연은 자신의 사후 2년 동안 컴퍼니의 마지막 세계 투어를 진행시킨 후 컴퍼니를 해체시켜 달라는 커닝햄의 유언에 따라 독일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되었다. 창단 이후 세계적인 현대 무용단으로 우뚝 선 머스 커닝햄 무용단은 세계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채, 올 12월 31일 뉴욕 아모리 파크에서 있을 공연을 끝으로 해체될 예정이다.

    우여곡절이 담긴 대가들의 경험담이 대개 그렇듯이 머스 커닝햄의 작품 역시 무용단이 창설된 50년대 당시에는 미국 현지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1963년에 시작된 첫 세계 투어를 기점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독일 베를린과 맺은 커닝햄 무용단의 인연 또한 깊다.

    1970년대 베를린 예술협회의 초청 공연을 시작으로 1988년에는 커닝햄이 레지던스에 초대된 바 있으며, 1999년과 2002년에도 커닝햄 컴퍼니의 베를린 투어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었다. 이처럼 긴밀했던 과거의 협력에 비춰보자면, 피나 바우쉬로 대변되는 동시대의 독일 탄츠테아터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어법으로 독일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커닝햄 컴퍼니의 마지막 베를린 투어가 일찌감치 매진되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연극성, 혹은 소도구나 움직임 자체에서 파생되는 내러티브가 비교적 강하게 나타나는 전후 독일의 탄츠테아터와는 달리 머스 커닝햄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포스트모던 댄스는 움직임 자체에 대한 탐구로 점철된다. 선율이 강조된 음악이나 스토리텔링 방식의 내러티브에 움직임을 종속시키지 않음으로써 동작 자체의 독자성을 강조하려 했던 커닝햄에게 있어 68세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존 케이지나 미술가 로버트 라우셴버그 같은 전위적 예술인들과의 공동 작업은 마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커닝햄은 예술에 대한 기존의 개념 자체를 폐기하려 했던 이들과의 작업을 통해 음악과 의상과 무대 미술, 그리고 움직임이 지극히 추상적인 날 것 그대로의 상태로 공존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용수들은 별다른 장식 없이 극히 간결하게 디자인된 스판덱스 무용복을 입고 등장한다. 이들의 동작 또한 지극히 간결하고 명징하며 정확하다. 발레와 모던 댄스의 근본적인 특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커닝햄의 포스트모던적 안무 동작은 신체 부위에 따른 고립(Isolation)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방식은 후세대 안무가인 윌리엄 포사이드의 기본 안무 체계를 선취한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그에 따라 무용수들은 클래식 발레에서 차용한 다리 동작 및 각각의 부위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 상체와 팔의 움직임을 조화시켜야 한다. 신체 부위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복잡한 움직임들을 무용수의 몸을 통해 동시에 구현시키는 안무 방식은 무용단 창단 60여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라 여겨지고 있다.



    커닝햄이 남겨준 마지막 선물


    이번 투어에는 머스 커닝햄이 남기고 간 유산이라는 의미에서 '더 레거시 투어 2011'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붙었다. 이번 마지막 투어 기간 중, 9월 22일과 23일 양일에 걸쳐 베를린 민중극장에서 커닝햄의 마지막 작품인 < Nearly 90² >(2009)이 공연되었고, 뒤이어 9월 26일과 27일에는 베를린 예술협회 스튜디오에서 세 편의 대표작 < Suite for Five >(1956-58), < Antic Meet >(1958), 그리고 < Duets >(1980)이 공연되었다.

    < Nearly 90² >은 제목에 암시되어 있듯이 안무가의 90번째 생일에 초연되었는데, 작품 창작 당시 이미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있던 커닝햄이 휠체어에 앉은 상태로 리허설을 지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닝햄 안무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전 작품들에 뒤지지 않는 동작 구조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음악은 존 케이지의 뒤를 이어 머스 커닝햄 무용단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온 코스기 타케히사(Takehisa Kosugi)와 세계적 록 그룹 레드 제플린의 베이시스트였던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이 담당했다.

    존 케이지의 ‘피아노를 위한 음악4-84 Music for Piano 4-84’를 배경음악으로 한  < Suite for Five >는 불규칙성과 불완전성을 주제로 한 케이지의 악보에서 출발한다. 당대 전위적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존 케이지는 자신의 악보를 완전한 하나의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연주자마다의 해석을 덧붙일 수 있는 일종의 열린 텍스트로 이해했다. 이런 사고의 전환은 창작을 위한 자극제로 커닝햄의 안무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다섯 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다음 작품 < Antic Meet >에서는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 로버트 라우셴버그가 디자인한 의상과 소도구를 이용한 재치 있는 동작들이 등장한다. 엉덩이 뒤에 붙은 의자, 또는 팔소매가 네 개나 달린 스웨터를 이용한 동작 구성은 커닝햄 특유의 추상적 동작과 사물의 구체성이 만나는 매우 독특하고 유머 넘치는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 Duets >에서는 총 6팀의 듀엣이 출연한다. 각각 파트너와 듀엣을 추는 무용수들은 작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한꺼번에 무대 위에 등장해 팀별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커플별로 아름답게 조화된 무용복을 입고 등장한 6쌍의 무용수들이 전하는 부조화 속의 조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

    공연 외에도 10월 3일까지 베를린 예술협회 전시실에서 열린 머스 커닝햄에 관한 설치 비디오 또한 관람할 수 있었다. 넓고 컴컴한 공간에 설치된 4~5대의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타시타 딘(Tacita Dean)이 촬영한 거장의 말년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두 발이 성할 때는 두 발로 춤을 추고, 성하지 않을 때는 휠체어에 앉아서 춤을 추고, 휠체어에 앉아서도 춤을 추기 힘들 때는 춤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으로 함께 춤을 추던 안무가 머스 커닝햄. 그가 남겨놓은 마지막 유산을 마주하고 있자니 문득 그가 남긴 한 마디가 마음 한 구석에 맺힌다.

    "사람의 몸이 할 수 있는 것에는 정해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은 무궁무진하다."






    글_손옥주 ds@dancingspider.co.kr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진_Tony Dougherty, Anna Finke,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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