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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09.15 16:05 | 조회 6447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위기,
    그리고 위기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
    - 에타프 당스 étape danse
    (2011년 8월 27일, 파브릭 포츠담fabrik Potsdam) -



    탄츠플란 포츠담: 레지던스 프로그램 Tanzplan Potsdam: Artists-in-Residence


    필자는 지난번 베를린 인터유니버시티 센터에 관한 글에서 간략하게나마 독일 정부의 무용 관련 집중 육성 사업인 '탄츠플란 독일Tanzplan Deutschland'에 관해 언급한 바 있다. 이번 글에서는 베를린, 브레멘, 드레스덴, 뒤셀도르프, 에센,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뮌헨과 더불어 5년간 탄츠플란의 지원 혜택을 받은 포츠담의 경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이 같은 독일 정부의 집중 육성 사업이 불러오는 긍정적인 측면과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탄츠플란의 지원 사업 이후에 몰려오는 문제들에 대한 자구책 중 하나로 실시된 포츠담의 '에타프 당스' 레지던스 프로그램 행사 또한 함께 살펴볼까 한다. 현대무용과 관련해서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규모로 시행된 독일 정부의 초특급 프로젝트였던 만큼 우리 무용계의 앞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펀딩을 합해 총 2050만 유로 이상의 지원금이 투입된 탄츠플란 사업은 수많은 지원 도시들 중 총 9곳을 선정하여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집중적으로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왔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나 무용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 및 이미 전문 교육을 이수한 젊은 무용인들의 지속적인 교육을 위한 프로젝트로 선정된 반면, 포츠담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안무가나 무용단을 위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었다.

    통일이 이루어진지 약 20여년이 지난 지금, 뉴욕의 뒤를 이어 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베를린에 비해 사실 지리적으로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주州는 그다지 많은 문화 인구가 결집된 지역은 아니다. 이는 매년 크고 작은 규모의 무용 전용 공연장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베를린과는 달리 브란덴부르크 주를 통틀어 현대 무용 전용 공연장이라고는 베를린에서 기차로 약 30~40분가량 떨어진 포츠담에 위치한 파브릭 포츠담이 유일하다는 사실이 반증해준다.

    하지만 '베를린과 가깝지만 현대 무용에 대한 관람 수요는 비교적 적다'는 이 같은 현실적 제약을 파브릭 포츠담은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는데 성공했다. 무용인들이 작품 발표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일정 기간 동안 포츠담에 머물며 작품 창작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제안했는데, 여타 지역에 비해 무용예술이 전반적으로 침체된 브란덴부르크 주의 문화 부흥을 꾀하는 탄츠플란의 의도와도 맞아 떨어져 최종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것이다.

    이로써 5년간 전 세계에서 모여든 약 108개 팀이 파브릭 포츠담이 주관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무료로 제공되는 숙소에서 평균 2~6주간 머물며 자유로이 작품 창작 및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에게는 매년 10월 레지던스 무용인들을 위해 마련된 대규모 축제에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그밖에도 매해 선발된 5~6팀의 신예 안무가 및 무용단에게는 여름마다 2주간 포츠담에 머물며 작품 구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때 이들은 현재 활동 중인 유명 안무가들을 멘토로 소개받아 작품에 관한 조언을 듣고 함께 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들 젊은 안무가들에게는 2주 후에 관객들 앞에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귀중한 기회 또한 주어졌다. 이처럼 다양하게 시도된 프로그램들은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예술가와 공연장 사이의 상호적 연계를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있었다. 탄츠플란 프로젝트가 기획될 단계부터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문제는 당연히 '그렇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총 지원기간을 5년으로 명확히 제한함으로써 그 기간 동안에 수혜를 받는 각 도시 프로젝트들의 인지도를 높이고 이를 발판 삼아 탄츠플란의 지원 이후 지방자치단체나 여타 크고 작은 문화 협력기관들의 지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이나 뒤셀도르프 등 현대 무용에 대한 관객층이 이미 두텁게 자리 잡고 있던 도시들에 비해 현대 무용 수요에 있어서는 불모지와 다름없던 포츠담은 탄츠플란 지원이 중단된 올 초부터 다시금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 지역의 특정 문화 수요 인구를 최종 기한 5년짜리 단발성 국가 지원 프로젝트만으로 확충한다는 것이 사실상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호평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탄츠플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파브릭 포츠담은 최근에 전혀 다른 방식의 새로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일종의 대안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대안의 발견, 에타프 당스



    '에타프 당스'는 파브릭 포츠담과 프랑스 문화원이 공동으로 기획하는 프로젝트로 매년 두 명의 프랑스 안무가들이 초청되어 몇 주간 포츠담에 머물며 차기작을 준비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다. 탄츠플란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지원 단체가 프랑스 문화원인 만큼, 참여 예술가가 프랑스 출신의 현대 무용팀들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올해엔 현재 한창 주목받고 있는 두 안무가  파브리스 랑베르(Fabrice Lambert)와 마르탱 피사니(Martine Pisani)가 초대되었는데, 8월 27일 오전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포츠담에서 이들의 차기작 발표 행사가 있었다. 각각 약 30여 분간 작품의 진행 과정(Work in Progress)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 안무가는 공연 전후 혹은 중간 중간에 작품 콘셉트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움직임과 그래픽 사이의 상호 관계에 주목해온 파브리스 랑베르는 이번 신작에서 그래픽이 주는 착란 현상을 무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들을 통해 재현해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무용수들의 빠른 움직임, 그리고 센서를 통해 무대 위에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모자를 대비시킴으로써 관객들의 착란 현상을 유도하고자 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관객들이 작품이 끝나고 나서야 무대 위에 놓여있던 소품 모자들이 어느새 조금씩 움직여 서로 위치가 바뀌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의 의외성을 연출하는 것이 이번 작품의 핵심인 듯 했다.

    마르탱 피사니는 약 2년 전, 독일 안무가 마르틴 나흐바(Martin Nachbar)와의 공동 작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새 작품에서도 무대를 가로지르게끔 높이 달아놓은 흰 줄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아래로 내려 당겨지기도 하고 위로 올려 당겨지기도 하는 줄의 움직임과 이에 반응하는 무용수들의 동작이 만들어내는 아슬아슬한 조화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계속해서 출렁이며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몇 가닥의 거대한 흰 줄은 관객들로 하여금 순식간에 같은 공간을 전혀 달리 감각할 수 있도록 한다. 아직 연습이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신작들이었기 때문에 안무가들 스스로도 아주 대략적인 작품의 주제나 주요 표현방식 정도만을 관객들에게 피력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앞으로 완성될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현대 무용의 보다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행사였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예술가와 관객들이 극장 측에서 준비한 점심을 함께 하면서 공연을 보며 궁금했던 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현대 무용과 극장 경영에 대한 이해가 극히 부족한 브란덴부르크 주 정부의 문화 담당자들 및 새로운 문화에 목말라하는 포츠담의 관객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후원과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파브릭 포츠담의 노력,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 속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포기되지 않는 춤에 대한 열정의 한 자락을 느낄 수 있었다.



    글 - 손옥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진 - Bernd Gurlt, Bruno Pocheron (fabrik Potsda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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