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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07.05 22:11 | 조회 6245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현대 무용의 열기
      
    <보더 보더 익스프레스Border Border Express>
    (2011.06.07~12, 베를린 헵벨 테아터Hebbel am Ufer)  



    서아프리카 출신의 심리학자 프란츠 파농이 <검은 피부, 흰 가면>을 발표한 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이었다. 식민모국 프랑스에서 식민지 출신의 '흑인 지식인'으로 살며 겪어야 했던 파농의 개인적 체험들이 이 책의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후, 1978년에 초판 발행된 팔레스타인 출신의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필두로 소위 제 3세계 출신 지식인들이 생산해내는 제국 비판적 담론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폭넓게 수용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수용 양상이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분위기와 더불어 대두된 미국 내의 자기 반성적 사회 경향과 맞물려 일어났다는 점 또한 익히 알려진 바이다.

    파농이 에세이를 발표하기 시작하던 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위 '탈식민주의 담론'은 주로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경험했던 지역 출신의 지식인들 - 특히 인도, 그리고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및 알제리와 서아프리카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프리카 국가들 - 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영어 또는 프랑스어 등 식민제국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이들은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식민주의 기획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다.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타자의 언어와 논리를 요구한다는 것이야말로 식민지 출신 지식인들의 중간자적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역설이 아닐까.



    타자의 시선을 넘어서


    최근 베를린 헵벨 테아터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현대 무용 페스티벌 <보더 보더 익스프레스>는 이 같은 역설이 퍼포먼스라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생산적으로 재발견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인상 깊은 행사였다. 6일 간 진행된 이번 페스티벌은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 출신으로 현재 독일에 체류 중인 페스티벌 기획자 '알렉스 무싸 사와도고(Alex Moussa Sawadogo)'가 큐레이터로 참여했으며, 아프리카 4개국 - 부르키나 파소, 케냐, 콩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에서 총 다섯 작품이 초청되었다.

    사실 일반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독일어권에서 아프리카 전통 무용이 아닌 아프리카 출신 현대 무용단의 공연을 본다는 건 좀처럼 흔치 않은 기회다. 다양한 테마를 바탕으로 한 각국의 현대 무용 공연을 접할 수 있는 영미권이나 프랑스어권과는 대조적으로 독일에서 개최되는 국제 퍼포먼스 페스티벌의 경우, 아프리카나 아시아 출신의 작품들을 각국의 문화, 역사적 특성을 배제한 채 대륙 전체로 뭉뚱그려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행사의 큐레이터인 사와도고 역시 한 인터뷰에서 "유럽 작품들에 대해서는 테마와 지역적 구분을 분명히 하는 반면, 독일 페스티벌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안무작들이 선보여지는 경우에는 오로지 '아프리카, 아프리카!'라는 테마 안에 가두어버린다."며 독일에서 행해지는 아프리카 작품들에 대한 재현 방식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동일화된 '아프리카 현대 무용'이 아닌, 서로 다른 역사적 사회적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아프리카 각국 안무가들의 실제 고민에 귀 기울이고자 했던 이번 행사의 큐레이팅은 기획 의도 자체에서부터 여타 유럽의 퍼포먼스 페스티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타문화 전시' 성격의 큐레이팅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의 신체와 서양의 컨셉이 만났을 때



    이번 행사에 초대된 안무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케냐 출신의 오카취(Opiyo Okach)나 부르키나 파소를 대표하는 안무가 사누(Salia Sanou) 등, 유럽 관객들에게 이미 친숙한 이름들과 더불어 현재 국내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콩고 현대 무용 단체인 바닝가 무용단(Compagnie Baninga)의 안무자 비디포노(Delavallet Bidiefono) 등의 새로운 얼굴도 발견할 수 있다.

    바닝가 무용단의 안무자와 무용수들은 오랜 기간 동안의 프랑스 식민 통치 후에 찾아온 불안정한 사회적 현실과 90년대의 콩고 내전을 함께 경험하며 자란 젊은 세대에 속한다. 비디포노의 말에 따르면, 이들에 대한 콩고 정부의 태도는 '현대 무용은 우리 전통의 것이 아닌, 서양 사람들의 것이니 현대 무용을 계속하려면 서양에 가서 서양 사람들을 위해서나 춤을 추라'는 식의 무관심으로 일관되어 있다고 한다. 후기 식민시기를 경험한 여러 국가들에서 이미 공통적으로 나타난 바 있는 이 같은 정부의 극단화된 민족주의적 자세는 오히려 그의 무용단이 유럽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해 준 측면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역설을 만들어낸다.

    오카취나 사누가 자신들의 솔로 작품을 통해 케냐와 우간다 사이 접경 지역의 복잡다난한 일상을 그려내거나 혹은 부르키나 파소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보낸 유년기를 추억하려 했다면 이번 페스티벌의 개막을 알렸던 바닝가 무용단의 퍼포머들은 다양한 무대 요소를 활용함으로써 콩고 국내의 사회적 문제를 자신들이 '더불어' 살아갈만한 것으로 전유한다.

    음정이 아닌, 음의 강도와 속도만이 강조되는 빠른 라이브 드럼 연주에 맞춰 군무를 선보이는 네 명의 퍼포머들. 그들이 기본적으로 학습해 온 동작이나 전반적인 안무 컨셉은 서양적 문법에 충실했다 할지라도, 퍼포머 개인의 신체를 매개로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은 충실하게 익힌 서양적 문법으로부터 끝없이 미끄러지고 빗겨나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미끄러지는 순간에, 바로 이 빗겨나가는 순간에 비로소 바닝가 무용단원들의 '동작'이 탄생한다. 이들의 턴은 보다 민첩하고 이들의 점프는 보다 높고 유연하다. 음악과 조명과 무대 미술에 맞춰 거의 즉흥적으로 나오다시피 하는 이 같은 민첩함과 유연함이 바로 이들의 동작을 정의한다.

    퍼포머들이 발꿈치를 앞으로 내딛는 순간 하나에도 발끝의 떨림을 통해 그 긴장감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 같은 동작 하나하나에 그들의 일상적 고민들이, 희망과 절망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꿈이 적혀있다. 아프리카 퍼포머들의 전시되지 않은 '진짜 동작'을 봤으니 공연이 끝난 후, 베를린 관객들이 이례적으로 바닝가 무용단에 기립박수를 보낸 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었다.





    글_손옥주  ds@dancingspider.co.kr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진_사진 1, 2: Patrick Fabre
         사진 3: Antoine Tempe
         사진 4, 5: Border Border 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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