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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03.22 12:29 | 조회 5706

    나흘간의 반란, 제 8회 <100° 베를린>



    며칠 전, 친구에게서 뜬금없는 제안을 받았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짧은 퍼포먼스를 할 예정인데, 혹시 같이 할 생각 없어?" 독일에서 공연 관련 학문을 공부하고 있고, 이곳 공연장에서 일을 도와가며 수도 없이 무대 주변을 들락거렸지만, 어디까지나 주된 활동 영역은 '무대 곁'이지 '무대 위'가 아니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공적 공간의 아우라가 뒤샹의 변기를 미적 오브제로 승화시키듯이, 관객들이 들어찬 공연장은 무대 위에 펼쳐질 텍스트가 무엇이든 간에 그 자체로 숭고하지 않았던가. 허나 '어떻게 감히 내가…….'와 '나도 과연……?' 사이를 오가는 찰나의 갈등은 가히 무의식적으로 순식간에 튀어나온 "그래, 한 번 해보지 뭐."라는 대답에 금세 그 기세가 꺾이고야 말았다.



    당신도 퍼포머(Performer)가 될 수 있다!

    베를린에 체류 중인 무대 미술가 겸 퍼포머 이수은씨가 구상한 <타지로서의 과거-모두 한바탕 놀아보자! (Vergangenheit als Ausland-wir feiern!)>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인원은 약 20여명에 달했다. 많은 인원만큼이나 이번 퍼포먼스에 참석하게 된 나름의 이유들도 서로 달랐다. 필자처럼 아는 지인을 통해 온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국 문화원에서 진행되는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정보를 접하고 참석하게 된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배낭여행 차 단 며칠간만 베를린에 와 있다가 말 그대로 우연히 이곳 한인 사이트를 통해 이번 퍼포먼스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온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 무대에 선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이라는 점이었다. 말 그대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오로지 '나도 과연 퍼포머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반신반의의 호기심 하나로 뭉친 셈이었는데, 정작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참 잘하더라는 것이었다.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퍼포머로 만들어줄 수 있는 마술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관객과 퍼포머라는 이분화된 인식의 경계를 뛰어넘어 퍼포머로서의 관객을 창조해내는 것, 그것이 바로 프리랜서 연극 및 퍼포먼스 행사 <100° 베를린>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움직임의 열정이 끓는 온도 <100° Berlin>

    마치 공개경쟁을 통해 모델이나 가수를 뽑는 TV 프로그램의 상업적 문구와도 같은, '당신도 퍼포머가 될 수 있다!'는 <100° 베를린>의 슬로건. 하지만 사실 이 기본 취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행사가 성격상 자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를린 최대의 무용·퍼포먼스 전용 극장 헵벨 테아터(HAU)와 소규모 프리랜서 집단의 프로젝트를 위한 공연장 조피엔젤레(Sopiensaele)가 공동 주관하는 이 행사는 올해로 8해째를 맞았다.

    자본화된 유명 극단이나 무용단의 문화 독식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오로지 비상업적인 프리랜서 예술가나 공연 집단의 작품에만 공연 기회를 준다. 올해는 2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 간 위의 두 공연장에서 개최되며, 이 기간 중에 각국에서 모여든 총 120여 팀에 달하는 공연예술가들의 작업을 접할 수 있다.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지원 절차는 꽤나 간단하다. 두 공연장의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해 작성한 후 두 공연장 중 한 곳에 보내면 된다. 신청 시 중요한 점은 퍼포머의 연락처, 프로젝트의 제목과 전체 컨셉에 관한 간략한 설명, 함께 하는 퍼포머들의 정보, 필요한 공간 및 기자재, 그리고 예상 소요 시간 등 행사 주최 측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빠짐없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류 신청은 보통 그 이전 해 말에 마감되는데 (가령, 이번 2011년 행사의 서류 지원 마감일은 2010년 12월 3일이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공연을 동시적으로 진행시켜야 하는 행사 성격상, 공연 내용에 상관없이 선착순 120팀만을 선발하여 공연 기회를 준다. 공연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으로는 최대 공연 시간이 1시간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30분 이내에 무대 설치와 해체가 끝나야 한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나 영향력 있는 문화재단의 지원이 없는 만큼 작품 제작이나 무대 장비 이동 등을 위한 지원금은 제공되지 않으나, 행사를 주최하는 공연장 두 곳 모두 베를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곳들이기 때문에 프리랜서 예술가들에게는 두 곳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은 팀들은 마이 스페이스에 개설된 공식 블로그(www.myspace.com/100gradberlin)를 통해 미리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한편, 참석이 확정된 다른 예술가들과 다양한 정보 및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다.

    특히 행사 마지막에 수여되는 '페스티벌상' 선발을 위해 독일 국내의 각종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있는 젊은 기획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데, 이 상을 수상하는 작품들은 차후에 이라는 제목 하에 일반 정기 공연 프로그램에 편성되어 다시 한 번 두 공연장에서 발표된다. 매년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는 <100° 베를린>이나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의 <페스티벌 임풀스 Festival Impulse> 등의 자유 극단 및 예술가들을 위한 공연 행사는 현재 새로운 퍼포먼스적 시도를 발굴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장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특히 행사를 통해 배출되는 수상작들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독일어권 전역에 걸쳐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있다.

    <100° 베를린>에서 수여하는 '페스티벌상' 수상작의 경우, 올해에는 처음으로 폴란드 슈테친의 카나 극장(Teatr Kana)과의 협약을 통해 상을 수상하는 다섯 팀에게 폴란드 공연의 기회까지도 주어지게 된다. 이 같은 기회 제공은 국제화된 문화 시장에 의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는 프리랜서 공연계에 있어 창작활동을 위한 소중한 모티베이션이 되고 있다.

    <100° 베를린> 행사 기간 동안 진행되는 주요 부대 행사로는 '100 라트 100 Rat'를 들 수 있다. '100 라트'는 행사에 참석하는 자유 공연예술가들을 위한 일종의 상담 서비스다. 상담자로는 독일 국내의 저명한 공연 관련 장학재단이나 공연장 대표들이 참석하며 이들과의 개인 면담을 통해 베를린에서 프리랜서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주요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다.





    글_손옥주 ds@dancingspider.co.kr
    사진_www.hebbel-am-ufer.de / www.sopiensaele.com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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