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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1.01.03 22:43 | 조회 6468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2010
    (Spielzeit Europa 2010)



    공연, 그리고 오늘의 날씨 공연은 특정 시각에 특정 장소에서 진행되는 일회적 행사이다. 게다가 공연은 언제나 관객을 소비층으로 확보해야 한다. 따라서 그 생리상 어떤 식으로든 외적 영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지원금의 규모가 될 수도 있고 관객들의 반응이 될 수도 있으며 공연장의 평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럽 전역에 걸친 무차별적 폭설이 독일 뉴스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한지도 어언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예상컨대, 어쩌면 극단적인 기후변화야말로 공연을 저해하는 가장 위험한 미래형 적신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운명처럼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시즌에 맞춰 찾아온 엄청난 폭설 때문에 내심 '과연...관객들이 오긴 할까?'란 의문이 들었지만, 예외적으로 퍼붓는 눈조차 지속적으로 공연장을 찾는 베를린의 두터운 관객층을 어쩔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예외상태를 허락지 않는 부지런한 관객들 덕분에 베를린 공연계의 겨울 시즌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The Event of the Self/Other
    사샤 발츠 무용단의 새 작품 <콘티누Continu>로 막을 연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2010’은 11월 중순부터 12월까지 이어졌다. 이 기간 동안 총 6편의 초청작품들이 메인 공연장인 '베를린 축제의 전당(Haus der Berliner Festspiele)'에서 선보여졌다. 올해의 테마는 독일을 비롯한 최근 유럽 공연계 전반의 관심을 반영하듯 '나 자신과 타자(사이)의 사건(Das Ereignis des Selbst/Anderen)'이 채택되었다. 여기서 나와 타자 사이에 무엇인가가 발생한다는 것은 행사 프로그램에도 명시되어있듯 다양한 공연 제공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경험 가능한 대화'를 시도하게하려는 행사 큐레이팅 의도와 연결된다. 이때 '경험 가능한 대화'란 언어와 언어의 교환적 층위, 다시 말해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말의 층위를 넘어선다. 즉, 타자에 대한 이해가 아닌 타자에 대한 경험이 문제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는 심지어 나와 남 사이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나와 나 사이의 소통여부, 즉 내 안에 있는 낯선 자아를 찾아나서는 고달픈 여정으로까지 나아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에의 물음이 습관이 된 지금 우리에게 있어 '나'에 관한 물음은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다른 한 편으론 늘 그렇듯 골치 아픈 주제다. 사실 한 해가 갈수록 국제 규모의 공연 관련 행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 같은 테마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타자와의 만남, 혹은 내 안의 낯섦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다루었던 90년대 판 인문서적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번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2010’의 표어는 타자성이라는 테마가 붐을 이루고 있는 공연계의 현재가 투영된 한 예에 불과하다. 1989년의 사건들(가령 구소련연방의 페레스트로이카나 독일의 베를린 장벽 붕괴 등)이 앞으로의 소위 글로벌 라이제이션을 향한 신호탄이었다면,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10년의 세계는 마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붐을 이뤘던 만국 박람회의 축소판 같다는 인상을 준다. 이 같은 인상은 특히 국제 규모로 유치되는 무용, 퍼포먼스 축제에서 보다 쉽게 받게 된다. 왜냐하면 비언어 장르라는 특성상 연극에 비해 국제적 행사를 보다 원활히 조직할 수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점차 공연예술장르에 있어서 연극과 무용의 장르적 경계가 모호해지며 실제로 연극에 비언어극적, 퍼포먼스적 요소를 도입하는 사례가 월등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매해 개최되는 공연 행사들 중 독일어권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연극제인 <테아터트레펜Theatertreffen>을 제외한 <슈필차이트 오이로파>등의 연극, 무용, 퍼포먼스 장르 모두를 아우르는 페스티벌 프로그램은 현재 대부분 무용작품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몸을 매개로 하는 비언어적 장르라는 무용 자체의 결정적 특징으로 인해 타 문화권과의 교류가 비교적 원활할 수 있으며, 이는 더 나아가 국제 규모의 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오늘날 무용 관련 국제 행사에 각인된 '타자의 문제' 혹은 '다름의 문제'란 어쩌면 이 같은 사회적·시대적 특수 조건으로부터 도출된 부수적인 산물일지도 모른다. 이번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2010’처럼 당당하게 타자의 문제를 주제로 삼는 행사를 접할 때, 무조건적인 흥미보다는 '왜 하필이면 이런 주제를(Why?)'이라는 질문을 먼저 하게 되는 이유 또한 이런 회의적인 생각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주제를 선택한 배경에 대해 되물은 다음에는 '그렇다면 어떻게(How?)'의 단계로 질문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번 행사에 초대된 6편의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통해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관계 형식에 대한 궁금증('그렇다면 어떻게?')을 풀어보고자 한다.

    프로그램 사샤 발츠 앤드 게스츠 (Sasha Waltz & Guests) / Continu : 올 6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초연된 사샤 발츠의 신작이자 올 ‘ 필차이트 오이로파’의 개막작. '지속(Kontinuität)'을 의미하는 작품 제목에도 암시되어있듯이 발츠의 이번 작품은 지난 십년 동안 이루어진 작업들의 집대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베를린과 로마에서 진행된 박물관 프로젝트에서 주요 영감을 얻은 그녀는 24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에드가 바레제(Edgar Varèse)의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배경으로 안무와 음악과 무대 미술이 조화된 무대를 선보인다. 크쥐츠토프 바를리코프스키 (Krzysztof Warlikowski) / Un Tramway :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의 대표작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새롭게 각색·연출한 작품.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폴란드 출신의 연출가 바를리코프스키와 여주인공 블랑쉬 뒤부아 역할을 맡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여배우 이자벨 위뻬르(Isabelle Huppert)의 만남만으로도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캐나다 작가 와지디 무아바드(Wajdi Mouawad)의 손에서 재탄생한 새로운 버전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에서 소포클레스(Sophokles)에 이르는 다양한 문학 텍스트들이 추가적으로 삽입되기도 했다. 발레 프렐조카주/볼쇼이-테아터 (Ballett Preljocaj/Bolschoi-Theater) / And then, one thousand years of peace : 프랑스를 대표하는 발레 안무가 안쥘랭 프렐조카주의 2010년 신작이자 프렐조카주 발레단과 볼쇼이 발레단의 첫 공동 작품. 러시아-프랑스 문화의 해를 기념해 제작된 작품으로 프렐조카주 발레단의 현대적인 안무 방식과 볼쇼이 발레단의 전통적인 발레 양식의 만남이 인상적이다. 무대 미술을 담당한 인도 출신의 설치미술가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음악을 담당한 프랑스의 테크노 뮤지션 로랑 가르니에(Laurent Garnier) 등의 스타급 예술가들과 함께 한 팀 작업 또한 화제가 되었다. 요한계시록에 착안한 프렐조카주의 이번 안무는 신화와 종교, 그리고 일상에서의 제의 등을 주제로 삼는다.

     

     

     

    글_손옥주 사진_손옥주, www.udk-berlin.de ds@dancingspider.co.kr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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