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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0.03.10 09:35 | 조회 8981


    <독일 탄츠테아터1> 바라보는 피나 바우쉬,
    생각하는 게르하르트 보흐너

     

    작년에 작고한 독일 출신의 세계적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대표작 <봄의 제전>(1975)과 <카페 뮐러>(1978)가 이번 달에 우리나라 관객을 찾아온다. 그녀가 이끄는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70년대 안무작들 중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두 작품의 공연 소식은 공연계에 봄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와 함께, 피나 바우쉬의 이름에 마치 필수 수식어처럼 예외 없이 따라붙는 '탄츠테아터(Deutsches Tanztheater)'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과 궁금증도 점차 커지고 있다. 과연 독일 탄츠테아터란 무엇이며 이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어떤 안무가들을 꼽을 수 있을까? 이번부터 약 3회에 걸쳐 이루어질 독일 탄츠테아터의 대표적 안무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같은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를 희망해본다. 그 첫 번째로 이번 글에서는 독일 탄츠테아터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피나 바우쉬(Pina Bausch), 그리고 전후 60, 70년대 독일 탄츠테아터를 대표하는 안무가 중 한 명인 게르하르트 보흐너(Gerhard Bohner)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관찰자이자 수집가로서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와 그녀가 이끄는 부퍼탈 탄츠테아터 앙상블은 1979년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봄의 제전>을 들고 처음으로 서울을 찾은 이후 지금까지 활발한 교류를 가져왔다. 특히 이들은 80년대 초반부터 작업해온 '도시 국가 시리즈'의 13번째 작품이자 한국을 소재로 한 작품인 <러프 컷>(2005)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느낌을 남겨주기도 했다. 피나 바우쉬의 개인적 이력은 60년대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독일 탄츠테아터의 발전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고도 중요하다. 자신의 이름을 딴 '라반 기보법Laban-Notation'의 창시자이기도 한 20, 30년대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대표적 이론가인 루돌프 폰 라반(Rudolf von Laban)의 제자 쿠르트 요스(Kurt Jooss)는 1920년대 후반, 독일 에센에 예술종합전문학교인 폴크방 학교(Essener Folkwangschule)를 설립한다. 그곳에서 무대무용과 무용교육학을 공부한 피나 바우쉬는 1959년부터 2년간 독일 학술교류처의 특별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시에 호세 리몽 등의 안무가를 사사하며 당시 활발히 전개되던 미국의 포스트모던댄스를 직접 체험한다. 스승인 요스의 초청으로 독일로 돌아온 그녀는 무용수로 활동하던 중 1969년 스승의 뒤를 이어 폴크방 학교의 무용학과장으로 임명된다. 이후 바우쉬는 극장의 쇄신을 꾀하고 있던 부퍼탈 극장의 극장장인 아르노 뷔스텐회퍼(Arno Wüstenhöfer)의 요청으로 1973년 부퍼탈 극장의 무용부서를 맡아 마침내 '탄츠테아터 피나 바우쉬'라는 이름의 무용단을 창설하기에 이른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단원들로 구성된 부퍼탈 탄츠테아터 앙상블의 안무 작업은 당시로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획기적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질문 던지기'에 기초한 안무방식이다. <칠거지악>(1976)과 <푸른 수염>(1977)의 창작 시기 즈음에 시작된 이 획기적인 안무 방식은, 바우쉬가 던지는 단어나 상황을 듣고 그에 대해 단원들 개개인이 떠오르는 느낌을 어떤 식으로든 즉흥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때 바우쉬뿐만 아니라 모든 단원들은 다른 단원이 즉흥적으로 표현해낸 것들을 잊지 않고 차후에 다시 기억해낼 수 있도록 빠짐없이 기록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일차적인 과정이 끝나면 바우쉬는 흩어져있는 퍼즐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춰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듯이, 개연성 없는 서로 다른 수많은 동작들을 연결시켜 작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충돌 몽타주나 콜라주 기법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질문 던지기의 과정은 하나의 작품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모든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데, 각각의 작품을 위한 피나 바우쉬의 질문이 때때마다 전혀 다른 것이 아니라 공통적인 질문들(가령,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성차별 문제나 어린 시절에 겪었던 여러 가지 경험들 등)이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서로 다른 작품들에 비슷한 이미지의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 역시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1975), <봄의 제전>(1975), <칠거지악>(1976), <카페 뮐러>(1978), <콘탁트호프>(1978), <왈츠>(1982), <카네이션>(1982), <마주르카 포고>(1998) 등이 있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 게르하르트 보흐너
    피나 바우쉬, 한스 크레스닉(Hans Kresnik), 주잔네 링케(Susanne Linke), 라인힐트 호프만(Reinhild Hoffmann)과 더불어 60년대 이후의 독일 탄츠테아터를 대표하는 안무가 중 한 명인 게르하르트 보흐너.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심지어 독일에서조차 아직까지도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아마도 다른 안무가들에 비해 단명한데다가 (1992년에 사망) 오랫동안 앙상블 없이 혼자서 솔로 작업 위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앙상블을 이끌어갔던 여타 안무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공간과 인간의 움직임 사이의 상호 관계에 역점을 둔 보흐너의 지적인 안무 작업이 부퍼탈 탄츠테아터와 같은 내러티브적 탄츠테아터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는 탄츠테아터 형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분명 독일 탄츠테아터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는 것이었다. 게르하르트 보흐너는 독일 남부 도시 칼스루헤에서 무용과 체조교육을 받은 후, 베를린으로 올라와 독일 표현주의 무용의 창시자인 마리 뷔그만(Mary Wigman)으로부터 현대무용을 배운다. 이후, 만하임 국립극장과 프랑크푸르트 시립극장, 그리고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오페라 극장 등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1972년에 다름슈타트 탄츠테아터의 상임 안무가로 발탁된다. 그곳에서 보흐너는 12명의 무용수들과 함께 관객의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구상하여 무대에 올리는 등,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작품을 발표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관객들에게 수용되지 못한 채, 결국 1975년 다름슈타트 탄츠테아터는 작품에 대한 수용 부족과 무용단 내부의 분열로 인한 해체로 막을 내리고 만다. 이후 1978년에 아르노 뷔스텐회퍼에 의해 브레멘 탄츠테아터의 안무가로 임명될 때까지 그는 프리랜서 안무가로 활동하는데, 이 기간 동안 베를린 예술협회의 요청으로 20년대 독일 무용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오스카 슐렘머(Oskar Schlemmer)의 <삼화음 발레>를 재구성하기도 하고 피나 바우쉬의 요청으로 그녀의 작품 <카페 뮐러> 중 한 버전의 (<카페 뮐러>의 오리지널 버전은 총 네 버전으로 이루어져있다) 안무를 담당하여 부퍼탈 탄츠테아터 단원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 1978년부터 라인힐트 호프만과 함께 공동 상임 안무가로 브레멘 탄츠테아터를 이끌었던 보흐너는 그러나 3년 뒤, 무용단 작업 및 계약상의 이유로 브레멘을 떠나 홀로 베를린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그는 프리랜서 안무가로 활동하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 상 할 수 없었던 작업들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이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보흐너의 작업은 크게 슐렘머의 안무를 계승 및 발전시킨 바우하우스 탄츠, 그리고 바우하우스 탄츠의 영향 하에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솔로 작품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검은색 흰색 보이기>나 <(황금) 비율 안에서> 등의 솔로 작품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베를린으로 홀로 돌아와 무용수들의 지원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창작된 것들인데, 보흐너 자신이 고백한 바 있듯이 이 작품들은 주어진 신체적, 경제적 상황 하에서 만들어져야만 하는, 말하자면 최대한 경제적인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난점을 작업화 하는 것은 '추상적인 것들의 총체적 가능성들을 인간의 몸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보흐너의 솔로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의 작업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기도 했다. 무대 공간과 소도구를 이용해 극도의 추상성을 연출해내는 그의 탄츠테아터 스타일은 현재 '탄츠컴퍼니 루바토(Tanzkompanie RUBATO)' 등의 후진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릴리스>(1972), <오스카 슐렘머와 탄츠>(1977), <카페 뮐러>(1978), <검은색 흰색 보이기>(1983), <추상적 탄츠+세 편의 바우하우스 탄츠>(1986) 등이 있다.

    글_손옥주 ds@dancingspider.co.kr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중 사진_www.pina-bausch.de,www.veraroeh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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