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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추는거미 | 2010.01.09 18:27 | 조회 6779

    베를린 정기 공연 축제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베를린 공연계의 가을, 겨울 시즌 중심에는 ‘슈필차이트 오이로파(Spielzeit Europa)’ 행사가 있다. 매해 유럽 전역에서 6~7편 가량의 작품들을 초청하는 축제는 행사를 위한 전용 공연장인 '베를린 정기 공연 축제장(Haus der Berliner Festspiele)'에서 개최되며 2009년의 경우에는 10월부터 12월까지 약 3개월간 이어졌다. 마침 2009년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인지라 일 년 내내 베를린 전역에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어졌는데 이번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행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행사 프로그램에도 나와 있듯이 올 정기 공연 축제의 전반적인 컨셉은 "1989년의 평화로운 혁명을 기억하기 위한" 연극 및 무용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기획은 곧 다음과 같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고통으로 가득 찬 과거를 어떻게 관객들의 웃음과 마주하게 할 수 있을까?' 베를린 공연계의 2009년 고민은 그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7편의 초청작품을 통해 비로소 미학적인 실천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뛰어 넘기
    2009년 한 해 동안 베를린은 통일 이전의 시간으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듯했다. 방송 매체에서는 분단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억과 상상을 오가는 증언들이 흘러넘쳤고 심지어 이미 20년 전에 무너진 장벽이 기념 공원 조성을 위해 부분적으로 다시 세워지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일의 순간을 맞이하려면 그 전에 분단의 상황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분단 없이 통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역설적인 노력의 결실은 베를린시에서 제작한 한 장의 포스터가 증명해준다. 포스터에는 20년 전, 장벽 붕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2009년의 사람들이 함께 베를린 장벽 위에 어깨동무를 한 채 나란히 서서 맥주를 마시며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 담겨있다. 장벽 붕괴를 제대로 축하하기 위해 이미 무너진 장벽을 다시 쌓는다는 것. 뭔가를 뛰어 넘기 위해 그 뛰어 넘어야 할 뭔가를 다시 세운다는 것. 본말이 전도된 이런 상황은 하나의 사건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응용된 무수한 예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20년 전의 베를린 장벽 붕괴를 주제로 삼았던 올해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행사에 초청된 작품들은 이 역사적인 사건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을까. 그들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미학적 실천이란 베를린시가 제작한 포스터와 어떤 차이를 보일까. 더 나아가 차이가 있긴 한 걸까. 행사를 지켜본 후, 필자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차이가 분명 있다. 게다가 그 차이는 매우 크고 뚜렷하다.' 이번 ‘슈필차이트 오이로파’의 초청작들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뛰어 넘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을 위한 뛰어 넘기'가 아닌, '뛰어 넘는다'는 행위성 자체에 중점을 두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올 행사에서는 특히 이 같은 특징이 두드러졌는데, 그것은 무용, 음악, 연극 장르 간을 넘나드는 시도이기도 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차, 그리고 서로 다른 지리, 문화적 환경을 거침없이 오가는 실제 상황이기도 했다. 정치가 요구하는 과거, 현재, 미래, 즉 시간의 단선적인 구성은 암묵적인 위계의 대상이 된다.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듯이 현재의 시선으로 우리는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예상하며, 현재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축제를 전유한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 초대된 7편의 작품들이 이야기해주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 되었든 공간이 되었든 예술 장르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해내고 이것과 저것을 구별 짓는 것보다는 오히려 '뛰어 넘기', 즉 모든 가능성을 넘나들며 변화를 실천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따라서 고통스런 과거를 어떻게 현재와 만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과거를 고통스럽게 재생시키는 방식이 아닌, 과거와 현재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요소들을 만나게 하는 미학적 방식 속에서 하나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9년의 ‘슈필차이트 오이로파’ 행사는 그 좋은 예가 되었다. 다음은 이번 행사에 초대된 7편의 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다. 로얄 드 뤽스 (Royal de Luxe) / Die Riesen kommen - Ein Märchen für Berlin: 프랑스의 유명 거리극 단체 로얄 드 뤽스가 제작한 두 명의 거인들(Riesen)이 10월 1일부터 4일까지 나흘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 개막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베를린 분단을 상징하는 15미터짜리 큰 거인과 7미터짜리 작은 거인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베를린 시내 곳곳을 경유한 후, 마지막에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재회한다. 이 두 거인들이 지나간 곳들 중 몇몇 곳에는 베를린시 수력공사 협조 하에 발자국을 상징하는 분수 장치까지 설치되어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뜻하지 않은 의외의 물벼락을 선사하기도.

    실비 길렘, 로베르 르빠쥬, 러셀 맬리펀트 (Sylvie Guillem, Robert Lepage, Russell Maliphant) / Eonnagata: 이 시대 최고 무용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실비 길렘, 캐나다 출신의 유명 연출가 로베르 르빠쥬, 그리고 영국인 안무가 러셀 맬리펀트가 의기투합하여 18세기 프랑스의 외교관이자 스파이 겸 군인이기도 했던 실존인물 '쉐발리에 데온(Chevalier d'Éon)'의 일생을 무대 위에 그려낸다. 독일 초연. 쉐발리에 데온은 성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수년간 공식적인 자리에 여성 복장을 하고 나타나 화제가 되었던 인물인데, 세 사람은 이 인물의 일생을 온나가타 연기법, 즉 남자배우가 극도로 양식화된 방식으로 여성을 연기하는 일본 가부키의 특수한 연기법을 바탕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이라는 서로 다른 항들을 가로지르는 무용극적 시도가 이루어진다.

    앙상블 모던, 샤사 발츠 앤드 게스츠 (Ensemble Modern und Sasha Waltz & Guests) /Jagden und Formen [Zustand 2008]: 현재 독일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단체, 현대 음악단 '앙상블 모던'과 현대 무용단 '샤사 발츠 앤드 게스츠'가 만났다. 현대 음악 작곡가 볼프강 림(Wolfgang Rihm)의 작품 은 90년대 중반 이래로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재해석되어왔으며, 이번 작품은 2008년 샤사 발츠의 안무로 재편성되어 프랑크푸르트에서 초연된 버전이다. 음악과 무용의 만남은 그야말로 베를린에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 작업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특징인데, 이 작품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장르 간의 공명과 소통이다. 두 단체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댜 사이다코바 (Nadja Saidakova) / Egopoint: 베를린 국립발레단의 주역인 나댜 사이다코바의 첫 번째 장편 안무 작품. 세계 초연이다. 그동안 베를린 국립발레단 내에서 수석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시에 차세대 안무가로 자신만의 작품을 발표하곤 했던 나댜 사이다코바는 세 명의 여성 무용수들, 그리고 여섯 명의 남성 무용수들과 함께 이번 작품을 완성했다. 유명 클럽 DJ인 루크 슬레이터(Luke Slater)가 음악을, 러시아 출신의 무대 미술가인 레나 루크야노바(Lena Lukjanova)가 소품과 조명을 담당했다.

    마이클 클락 컴퍼니 (Michael Clark Company) / New Work 2009: 지난 25년간 세계 무용계에 혁신적인 바람을 몰고 온 영국의 마이클 클락 컴퍼니가 드디어 ‘슈필차이트 오이로파’에 초청되었다. 12월 4일과 5일 이틀간 이어진 이번 공연의 1부는 1986년 초연된 가, 이어지는 2부와 3부는 2009년 신작 이 장식했다. 특히 이번 신작을 위해 마이클 클락은 데이빗 보위(Davie Bowie), 이기 팝(Iggy Pop), 루 리드(Lou Reed)의 음악 등 6,70년대를 풍미한 영국의 글램록 명곡들을 배경음악으로 삼았는데,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을 연상시키는 그의 동작 구성은 스티비 스튜워트(Stevie Stewart)의 무대 의상 및 영국 록음악과 더불어 더욱 빛을 발했다.

    탄츠테아터 부퍼탈 피나 바우쉬 (Tanztheater Wuppertal Pina Bausch) / Die sieben Todsünden: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부퍼탈 탄츠테아터가 피나 바우쉬 서거 후 처음으로 베를린 공연을 가졌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으로는 1976년 초연된 이후, 2001년과 2008년에 마찬가지로 피나 바우쉬에 의해 재해석된 <칠거지악>이 선정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바우쉬는 처음으로 탄츠테아터적 요소들, 즉 언어와 마임과 ('무용을 위한 무용'이 아닌) 일상 동작을 접목시켜 새로운 춤 형식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이번 공연에서는 메히트힐트 그로스만(Mechthild Großmann)과 조세핀 앤 엔디콧(Josephine Ann Endicott)을 비롯하여 76년 초연 당시 함께 했던,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대표적인 무용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샤사 발츠 앤드 게스츠 (Sasha Waltz & Guests) / Impromptus: 샤사 발츠 앤드 게스츠는 이번 행사에 두 작품이나 초대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 무용단이 현재 얼마나 많은 주목과 지원을 받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을 듯하다. 샤사 발츠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는 방향 중 하나는 바로 무용과 음악의 상호작용, 즉 '듣는 무용'과 '보는 음악'에 관한 것이다. 2004년에 베를린에서 초연하여 이미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인정받은 이 작품에서 그녀는 슈베르트의 곡들과 자신의 안무 동작들이 만나는 지점을 무대 위 공간 속에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글*_손옥주 ds@dancingspider.co.kr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연극학, 무용학 박사 과정 재학 사진_손옥주, www.riesen-in-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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